二十五日。
謁先祠。是日發引。幾午■〔下〕棺。灰役未畢故也。兩家奴頑甚不誠。罰三人。用灰方四寸。上則六七寸。皆以布尺爲準。此則奴之功也。【芿叱介之功。他奴不足道。】會葬七十餘人。莫不爲之悼惜。
謁先祠。是日發引。幾午■〔下〕棺。灰役未畢故也。兩家奴頑甚不誠。罰三人。用灰方四寸。上則六七寸。皆以布尺爲準。此則奴之功也。【芿叱介之功。他奴不足道。】會葬七十餘人。莫不爲之悼惜。
| 날 짜 | 1612년 윤 11월 25일 / 光海4 / 壬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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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용 |
선사(先祠)에 배알했다. 이날 발인(發引)했다. 낮 무렵이 되어서야 하관(下棺)했으니 이는 회격(灰隔) 공사가 끝나지 않았었기 때문이다. 두 집의 노(奴)들이 완둔(頑鈍)함이 심하여 성실하지 못하기에 세 명을 벌주었다. 회(灰)를 쓴 것이 사방 4촌(寸)이고 위로 6~7촌이니 모두 포척(布尺)을 기준으로 삼은 것이다. 이는 한 노의 공이었다.【잉질개(芿叱介)의 공이었고, 다른 노들은 말하기 부족하다.】 장례에 모인 자 70여 사람들이 죽은 이를 위해 애도하고 안타깝게 여기지 않은 이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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