五日。
大斂入棺。斂於外則堅固整齊。故儀節亦甚言斂於棺內之非。而鄭君燮全君勉又執己見。曾無師友辨。而只據家禮之圖。力爭棺內之是。不得已入鄕循俗。恨不得以禮送吾姑夫丈人也。
大斂入棺。斂於外則堅固整齊。故儀節亦甚言斂於棺內之非。而鄭君燮全君勉又執己見。曾無師友辨。而只據家禮之圖。力爭棺內之是。不得已入鄕循俗。恨不得以禮送吾姑夫丈人也。
| 날 짜 | 1612년 윤 11월 5일 / 光海4 / 壬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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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용 |
대렴(大斂)하고 입관(入棺)했다. 염(斂)은 관 바깥쪽을 견고(堅固)하고 정제(整齊)하게 해야 하기에 의절(儀節) 또한 관 안에 염하는 잘못에 대해 확고히 말을 했으나, 정군섭(鄭君燮), 전군면(全君勉)은 또 자신의 견해만 고집하니 일찍이 사우(師友)들의 변론도 없던 것이다. 그들은 다만 가례(家禮)의 도식만을 근거로 하여 관 안에 염하는 것이 옳다고 극력 논쟁을 하니, 부득이하게 고을에서 따르는 풍속을 들이게 되었다. 예(禮)에 맞게 우리 고부 장(姑夫丈)을 보내지 못한 것이 한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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