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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612년 2월 25일 / 光海4 / 壬子
날 씨 비가 뿌리고 종일 바람이 불다.
내 용
아침에 떠나 선사재(仙査齋)에 이르렀다. 정응(靜應)[채몽연(蔡夢硯)]이 산에 올라 일을 시작하여【선인(先人)의 묘갈(墓碣)을 만든다.】 오지 않고 머물면서 절구 한 수를 지어서 보내왔다. 낙재 주인(樂齋主人)[서사원(徐思遠)]이 밤에 산증(疝症)을 겪어서 이불을 끼고 일어났다. 나이가 많은데 병을 앓으니 우리들의 근심이 어떠하겠는가. 그러나 병을 경계하면 장수할 수 있으니, 이것이 어찌 속이는 말이겠는가. 말이 문가(文家)의 일에 미쳤는데, 그 아우가 곧 죽음에 나아가고 있으니 형은 비록 죽음을 면하였지만 어찌 홀로 살 수 있겠는가. 선백(善伯)[조응인(曺應仁)]【조응인(曺應仁)】이 그 일을 구원하고 그것을 하게하는 것이 옳겠지만, 생존하는 것이 둘을 온전히 하는 데 알맞은 것은 아니다. 그때 형을 구제하려던 의론이 정 노(鄭老)[정인홍(鄭仁弘)]【인홍(仁弘)】에게서 나왔는데, 지금에 이르러 감추기 어려워서 선백에게 책임이 완전히 돌아갔으니【수감되어 파직되었다고 한다.】 일처리가 명확하지 않은 잘못이 있을 것이다.【문홍도(文弘道) 여중(汝仲)의 막내아들이 아버지의 첩과 음행(淫行)을 저질렀는데 온 고을의 제족(諸族)들이 형을 무고한 것으로 서울에 데려가서 죽이는 것을 논의했다. 그의 처가 남편이 비명에 죽는 것을 원통하게 여겨 매번 엿보다가 틈을 얻어 발고(發告)한 것이니, 류연(柳淵)의 일과 더불어 모두 원통한 일이다. 앞에는 비첩(婢妾), 뒤에는 양첩(良妾)이니 필시 부첩(父妾)의 말이 추했을 것이다. 자세한 이름을 알 수 없다.】 이어서 말하기를, 선생님이 이 근경에 오셨지만 모두 여력이 없어서 조금도 도울 수 없으니 매우 유감스럽고 평생 동안 면목이 없을 것이다. 억지로 권하는 술을 마시고 취하여 시를 지었다. 산중에서 말을 타고 오다가 희로(希魯)[손처약(孫處約)]와 짐말이 뒤떨어져서 가는 곳을 알지 못하니 유감스럽고 우스웠다.

이미지

원문

二十五日。
灑雨終風。朝發至査齋。靜應上山始役。【治先人墓碣】不果來。留題一絶以贈來。樂齋主人夜經疝患。擁衾而起。年高病祟。我等爲慮何如。然徵病克壽。豈欺語哉。語及文家事。其弟旣就死。則兄雖免。豈宜獨生。善伯【曺應仁】雖救其事。而使之可也。而生存之。此非兩全之宜也。其時救兄之議。出於鄭老【仁弘】。而到今難掩。則專歸於善伯。【被囚罷官云】處事不明之失。則有之矣。【文弘道汝仲季子淫亟父妾。擧鄕諸族以誣兄論率京殺之。其妻痛夫非命。每爲窺伺得間發告。與■■柳淵事同其寃也。前則婢妾。後則良妾。必盡父妾之言醜也。不可詳也名。】仍言先生來此近境。謂我輩在此。而竝爲無力。分毫莫助。恨極平生。無以爲顔。被勸强酒。乘醉題詩。鞭山中。希魯及卜馬落後。不知去處。可恨可笑。

주석

1) 류연(柳淵)의 일: 류연은 대구의 선비로 1564년에 재산을 차지하려고 형을 죽였다는 누명을 쓰고 죽었는데, 1589년에 그의 부인이 남편의 억울함을 밝혀 누명을 벗긴 일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