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문중 자료 > 일기 > 모당일기(慕堂日記) > 03권 > 1612년 > 2월 > 21일

모당일기(慕堂日記) 리스트로 첫 페이지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마지막 페이지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7+KSM-WM.1600.2726-20150630.065310200001
URL
복사
복사하기

상세내용

상세내용 리스트
날 짜 1612년 2월 21일 / 光海4 / 壬子
내 용
선사(先祠)에 배알했다. 치재했다. 아침에 설(渫)[손설(孫渫)]과 사유(四喩)가 향교에서 와서 말하기를, 황해도(黃海道) 역적(逆賊) 김직재(金直哉)가 난을 일으켜 그의 아들이 발고되었고, 선전관(宣傳官)은 휘하의 관리들에게 추포될까 두려워 네 번이나 성내를 나왔다고 하며, 흉흉하게 공초에 연루되어 피살된 자가 부지기수이며, 또 호조정랑(戶曹正郞)이 와서 삼수량(三手粮)의 값을 거두었다고 한다. 장부에 적힌 수효 이외에도 명목을 교묘히 만들어서 거두어들이는 것이 대중없으니, 백성들이 관(官)의 최과(催科)를 불신할까 두렵다. 또한 세상의 변고를 볼 수 있는 일이다. 산행(山行)을 하지 못해서 다만 못의 물고기 사십 마리만 잡았을 뿐이니, 정성이 없으면 아무 일도 이루어지지 않다는 것이 이치이다. 처납(處納)과 백종숙(伯從叔)이 함께 재계했다.

이미지

원문

二十一日。
謁先祠。致齊。朝渫及四喩來自校。言黃海道逆賤金直哉起事。發其子宣傳官。惕被執下之吏追捕。四出城內。洶擾辭連。被殺者。不知其數。且戶曹正郞來。收三手粮價云。簿正之外。巧作名目。取斂無藝。恐民不信官催科。亦可以觀世變也。不得山行。只得池魚四十。無誠無物理也。處納及伯從叔叔同齋。

주석

1) 삼수량(三手粮) : 훈련도감(訓鍊都監)의 사수(射手), 살수(殺手), 포수(砲手)를 양성하기 위해 징수하던 세미(稅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