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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611년 12월 29일 / 光海3 / 辛亥
내 용
선사(先祠)에 배알했다. 당에 있었다. 『심경(心經)』을 읽었다. 사유(士綏)[이응기(李應祺)]가 술을 가지고 와서 수세(守歲)하는 것을 위로했다. 희로(希魯)[손처약(孫處約)]도 와서 취하여 갔다. 찰방 숙(察訪叔)은 저물녘에 와서 묵었으니, 제석(除夕)에 대한 생각 때문이다. 말이 이원익(李元翼)이 통곡한 일에 미쳐서는 숙씨(叔氏)가 "참으로 이른바 통곡이라 하는 것이 이것이다."라고 했다. 내가 "‘다른 날 지하의 선대(先代) 군주(君主)께서 어떻게 보도(輔導)했느냐고 물으신다면 신(臣)이 어떻게 답을 하겠습니까?’라고 한 이야기는 비록 급암(汲黯)이라 하더라도 이보다 더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라고 했다. 숙씨가 "오늘날의 조정은 이 늙은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바가 아니니 어찌하겠는가. 참으로 사직(社稷)을 위하는 신하이다."라고 했다. 내가 숙씨에게 일러 말하기를, "몸에 직명(職名)을 띠고 있지만 항상 사직하고 집에 있고자 하니, 곧 말이 있지 않겠습니까?"라고 했다. 숙씨가 길게 탄식하며 "내가 평소에 뜻 둔 것이 어찌 따뜻하고 배부른 것에 있겠는가? 이미 행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것이 아니고, 또 말할 수 있는 처지에 있는 것도 아니다. 어찌 전원에 물러나 거처하면서 천지를 부앙(俯仰)하며 자적(自適)할 수 있겠는가? 정녕 나의 오늘날 일이다."라고 했다. 대개 숙씨의 이 말은 상심한 데서 나온 것이고, 또 벼슬할 생각이 아주 없었기 때문이다. 밤이 깊어 술을 따라 숙씨가 다섯 순배를 마시고 나는 아홉 순배를 마셨다. 숙씨가 또 말하기를, "운문(雲門)의 부판(浮板)은 백성들에게 끼치는 폐단이 되지만 군(郡)의 수령이 막지 못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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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二十九日。
謁先祠。在堂。讀心經。士綏佩酒來慰守歲。希魯亦來醉去。察訪叔暮來爲宿。除夕意也。語及李元翼痛哭事。叔氏曰。眞所謂痛哭者此也。余曰。他日地下先主問輔導甚麽。臣何以答等說。雖汲黯莫此過也。叔氏曰。今日朝廷。非此老莫可。奈何。眞社稷臣也。余謂叔氏曰。身帶職名而恒退私在家。無乃有言乎。叔氏長吁曰。余之素志。豈在於溫飽也哉。旣不在有爲之位。又不在可言之地。寧退處田里。俯仰自適。政吾今日事也云。蓋叔氏此言。出於傷時。且甚泛濶於宦情故也。夜深酌酒。叔氏五巡。余九巡。叔氏又言。雲門浮板之爲民弊。郡倅莫能禁防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