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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611년 11월 4일 / 光海3 / 辛亥
내 용
아침에 덕소(德邵)[정민도(丁敏道)]를 만나 가지고 온 술을 마셨다. 박효백(朴孝伯)[박경전(朴慶傳)]이 인개(仁介)에 대해 말했다. 이곳에서 상류(上流)까지 또한 삼십 리[一舍] 남짓인데 노닐며 구경할 것은 많지만 다리에 힘이 없고 말이 지쳐서 계획했지만 가지 못했다. 비로소 좋은 곳을 알게 되었지만 가파른 곳이라 발을 디딜 수 없었다. 길을 돌아와 다시 계연(鷄淵)과 화연(花淵)에서 노닐다가 곧장 공암(孔岩)으로 향했다. 바위는 한 물줄기가 빙 도는 사이에 서쪽으로부터 우뚝 솟아있고 양면이 모두 병풍처럼 깎아질렀다. 안쪽은 더욱 기이하여 구멍이 바위머리가 끝나는 곳에 있어서 오솔길이 양쪽 언덕으로 통하는데, 말을 타고서는 겨우 들어갈 수 있지만 짐바리는 지나가기 어려웠다. 시 자(詩字) 칠언절구를 지었다. 언덕의 문을 통해 들어가니 이른바 ‘안쪽의 더욱 기이한 광경’이었다. 내려가서 당의 옛터로 옮겨갔는데 또한 삼족옹(三足翁)[김대유(金大有)]이 터를 정한 곳이다. 당 앞에는 선마암(仙馬岩)이 있는데 수십 명이 앉을 만하니, 이른바 속은 더 기묘했다. 마치 병풍이 하늘에 닿아 우뚝이 서있는 것 같았다. 서남쪽으로 두루 돌아보니 마치 내가 그림 병풍 아래에 앉아 있는 것 같았다. 곽예생(郭禮生) 공(公)의 새로운 거처에 있는 암대(岩臺)로 옮겨 앉았는데 대(臺)는 바로 그의 조부인 사간공(司諫公)이 과행하지 못했던 것이다. 공은 『소학(小學)』으로 몸을 단속하고, 을묘년의 화(禍)에는 헌장(憲長) 권발(權橃)의 죽음에 절개를 함께하였으니, 이름이 향기로워 기록에 남아 그 곧음이 세상에 전한다. 곽 생(郭生)은 가업을 이어받아 뜻을 이을 수 있는 자가 아니니, 부모를 잊었다는 의론에 연좌되어 고을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아 도망쳐서 숨은 자이다.【아버지가 노비에게 죽었는데도 그것을 갚지 않고 도리어 그 노를 총애했기 때문에 쫓겨났다.】 효백이 맛 좋은 술과 좋은 안주를 내어주었으니, 날이 추울 때이기 때문이다. 곽 생도 회와 시골에서 만든 막걸리를 조금 먹었다. 음식은 비록 담백하고 고아하지만 뜻이 매우 추악하니 "제향하지 않는다[不享]"고 할만 했다. 제공(諸公)이 저물녘에 취해서 말을 출발시켰다. 잠깐 효백의 집을 지나가서 효백이 저녁 식사를 준비했지만, 뒤에 있어서 따라오지 못하여 매우 정성을 그르쳤다. 장차 서지(西枝)에 이르려 할 때 배안에서 입석(立石) 오언절구를 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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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四日。
朝丁德邵酌佩酒。朴孝伯說仁介。自此至上流。亦一舍餘。多有遊賞。而脚懶馬倦。畫而不進。始知好田地峻絶處。難着脚也。回程更遊鷄淵花淵。直向孔岩。岩自西矗立於一水回環之間。兩面皆削立如屛。而內面尤奇。穴在岩頭盡處。而細路通於兩崖中。騎而僅容。馱難過也。得詩字七言絶句。由崖門入。卽所謂內面尤奇者也。下曲轉堂舊基。亦三足翁之所卜。堂前有仙馬岩。可坐數十人。而所謂內面尤奇。如屛參天壁立。周轉西南。恰如坐我畵屛下也。移坐郭公禮生之新居岩臺。臺乃渠王父司諫公之未果者也。公以小學律身。乙卯之禍。同節於權憲長橃之死。名香汗靑。世傳其直。生非肯搆繼志者也。坐於忘親之議。不容於鄕。而逃匿者也。【父死奴而不報之。反寵其奴。故黜之。】孝伯以美酒嘉肴進。端宜日寒。郭生亦小鮮膾及村醪。物雖淡古。而志甚麁惡。可謂不享。諸公日暮乘醉發馬。須臾過孝伯家。孝伯備夕食。而在後未及。殊失款意。將至西枝。波中吟立石五言絶。時未及而此亦絶筆吟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