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문중 자료 > 일기 > 모당일기(慕堂日記) > 03권 > 1611년 > 11월 > 3일

모당일기(慕堂日記) 리스트로 첫 페이지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마지막 페이지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7+KSM-WM.1600.2726-20150630.065310200001
URL
복사
복사하기

상세내용

상세내용 리스트
날 짜 1611년 11월 3일 / 光海3 / 辛亥
내 용
이른 아침에 도연정(道淵亭)으로 향하니 효백(孝伯)[박경전(朴慶傳)]이 따랐다. 집은 상류정(上流亭)에 있는데, 바로 김치삼(金致三) 공(公) 일지(一之)가 구입한 집이다. 잠시 관직에 있어서 버려두고 다스리지 않아 위에는 비가 새고 옆에는 바람이 불며 창은 날리고 벽은 떨어져서 모습이 매몰되었으니, 매우 볼만 하지 않았다. 소요당(逍遙堂)과의 거리는 겨우 오리(五里)인데, 산수의 형세와 정자를 세운 터가 두 당에 버금가는 것이니, 애석하도다. 머물면서 정 자(情字) 운의 절구를 지어서 외었다. 서지(西枝)에서 아침을 먹었다. 김우추(金遇錘) 장(丈)과 정민도(丁敏道) 공(公)이 술을 빌려 찾아왔다. 모두 낙화(落花)의 못에서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자고 약속했지만 김 장(金丈)은 바람을 쐴 수 없어서 효백(孝伯)[박경전(朴慶傳)]의 집에서 지레 술을 마시고 돌아갔다. 김우추정민도는 모두 지난날 함께 공부한 사람이다. 효백의 거처는 비록 두 당의 정자와 더불어 비견될 수는 없지만 또한 강가 마을이 문 앞에 있고 산봉우리가 높게 우뚝 솟아있으니, 이 또한 운문(雲門)의 하나의 장관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두 당에 산봉우리가 솟아있다면 어찌 적막하게 웅장한 이름이 없을 수 있겠는가? 주인이 술로써 옛정을 펴고 근체 율시 한 수를 지어주었다. 다만 한스러운 것은 헌걸찬 사람이 술을 마시지 못하는 것이었다. 행렬이 낙화담(落花潭)에 도착했다. 못은 겨우 두세 길 깊이였고 회환암(回環岩) 또한 높거나 넓지는 않았지만 정렬하여 서서 둘러싸고 있으니, 기묘한 모습이 저절로 시를 읊조리는 사이에【암 자(岩字) 운의 시를 지었다.】 드러났다. 세상에서 전하기를, 고려군(高麗君)이 동경(東京)으로부터 와서 이궁(離宮)에서 노닐 때에【김해(金海)에 있다고 한다.】 이곳을 경유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일찍이 머물면서 이 바위를 완상한 적이 있었는데, 어떤 기생이 바람을 맞으며 어지럽게 춤을 추었기에 화락암(花落岩)으로 이름을 붙였다. 그리고 매전(買田)서지(西枝)【역(驛) 이름이다.】를 설치한 것이 모두 그때 비롯되었다고 한다. 일리(一里) 남짓을 들어가자마자 대연(臺淵)을 만나서 층 자(層字) 운으로 절구를 지어 기록했다. 연못의 크기는 화담(花潭)과 비등하지만 빼어난 경치는 미치지 못했다. 무릇 도연(道淵) 이하는 형세가 광대하고 화담(花潭) 이상은 지역이 그윽하고 오묘하니, 이른바 점입가경(漸入佳境)이라는 것이 이것이다. 계연(鷄淵)을 지나 운문(雲門)【절 이름이다.】에 들어가니, 호거(虎踞)【바위 이름이다.】와 밀담(密潭), 이목(梨木), 화작(化作)【연못 이름이다.】이 모두 절문 서쪽 위아래에 있었다. 계연(鷄淵)과 호봉(虎峯)은 서로 기운을 눌러서 이름을 지은 것인데, 이는 바로 풍수를 보는 무인(誣人)의 이야기이니 나는 믿지 않는다. 이목(梨木)과【이목(梨木)이 운문(雲門)에 있으면서 일찍이 이 연못에서 노닌 적이 있었는데, 다른 곳에 가뭄이 들어서 먹을 찍은 큰 붓을 한번 휘두르니 비가 내렸다. 곧바로 동산에 내려가니 채소마다 윤택했기 때문에 이목으로 연못 이름을 붙였다. 이목은 용왕(龍王)의 자손이다.】 화작(化作)에【용왕(龍王)은 이목(梨木)이 비를 내렸다는 것을 듣고서 매우 노하여 그를 불러오게 명했다. 이에 이목연(梨木淵) 상류에서 화작(化作)이 날뛰어 앞산 곤륜(崑崙)을 파괴하고 갔는데, 이것이 화작연(化作淵)이다.】 이르러서는 더욱 황당한 말이기 때문에 전하는 것을 또한 듣지 않았다. 그러나 바위가 기이하고 물이 맑으며 지역이 외져서 이른바 별세계(別世界)이니 인간 세상이 아닌 것 같았다. 전사(殿舍)는 무너지고 겨우 법당(法堂)만 남아있으며 담장과 뜰은 풀로 뒤덮여서 다만 선탑(禪塔)에만 기록되어 있으니, 이는 훗날 와서 유람하는 자들에게 한 가지 흠이 되는 일이다. 초저녁에 동방(東房)에서 쉬었는데 노승(老僧) 두 사람이 불을 때어 대접했다. 대연(臺淵)에서 화작(化作)에 이르기까지 모두 절구를 읊은 것이 있다.

이미지

원문

三日。
早朝向道淵亭。孝伯從。家在上流亭。乃金公致三一之之所買屋也。暫居出世。棄而不治。上雨旁風。窓飛壁落。埋沒形狀。殊不可觀。距逍遙僅五里。山形水勢。立亭基址。亞於兩堂者也。惜哉。留題以諷之情字絶句也。朝食西枝。金丈遇錘丁公敏道措酒來見。皆期以酌話落花之潭。而金丈不可以風。徑飮於孝伯家而歸。金與丁皆昔日同榻人也。孝伯居。雖與兩堂一亭。不可等夷。而亦可謂江上村當戶直峯偃蹇矗立。此亦雲門之一壯觀也。若此峯峙於兩堂。則豈乃爾寂寥無雄名哉。主人以酒敍舊。贈近體一律。只恨赳赳不解飮也。行到落花潭。潭僅數丈。回環岩亦不高廣。而整立端拱。奇妙之態。自然呈露於吟哦之間【有岩字韻】矣。世傳高麗君。自東京遊於離宮。【在金海云】路曲〖由〗此地。故嘗留玩於此巖。有妓亂舞被風。花落岩以得名。買田西枝【驛名】之設。皆權輿於當日云。纔入一里餘。得臺淵以層字絶句識之。淵之大小等於花潭。而奇絶則不及焉。大凡道淵以下。形勢廣大。花潭以上。地界幽妙。所謂漸入徍境者此也。過鷄淵。入雲門。【寺名】虎踞【岩名】密潭梨木化作。【淵名】皆在寺門西上下者也。而鷄淵虎峯以相鎭壓而得名。此乃相地誣人之說。吾不信也。至於梨木【有■一子梨木在雲門。嘗遊於此淵。雖它處苦旱。而染墨大筆一揮。則雨下卽下。园蔬每沃若。故以梨木名淵。梨木龍孫也。】化作。【龍王聞梨木注雨。大怒命招之。乃於梨木淵上流。化作躍飛。破前山崑崙而去。此其化作淵也。】則尤爲荒唐之言。傳之亦不聽取。而巖奇水淸。地僻境幽。所謂別有天地非人間者也。殿舍頹壞。僅存法堂。墻庭蕪沒。只記禪塔。此則後來遊覽者之一欠事也。初昏舍于東房。老僧二人燃火以待。臺淵至化作皆有絶句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