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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611년 11월 2일 / 光海3 / 辛亥
내 용
아침을 먹은 뒤에 수운정(水雲亭)을 지났다. 동쪽으로 삼족당(三足堂)으로 통하고 서쪽으로는 파암(破岩)이 바라다 보인다. 암반에 물이 맑지만 유람하며 완상하는 것을 견딜 수 있겠는가? 낮에 삼족당(三足堂)에 올랐는데, 기와는 기울고 서까래는 무너졌으며 길은 묵고 누대는 황폐해졌다. 앞에는 깊은 못이 둘렀고 뒤에는 높은 봉우리가 두르고 있으니 빼어난 경치는 충분했지만 또한 고풍(高風)이 적막한 탄식을 견딜 수 없었다.【이름은 대유(大有), 자(字)는 ◯◯, 삼족(三足)으로 당에 이름을 붙였고, 김(金)은 그의 성(姓)이다. 산수(山水)에 마음을 두어 세상일은 떨쳐버렸으며, 남명(南冥)과 송계(松溪)가 그의 벗이다.】 중숙(從叔)의 삼 자(三字) 운(韻) 절구 한 수에 차운하고, 또 고 자(高字) 운의 근체 율시 한 수와 회 자(徊字) 운의 오언절구 한 수를 지었다. 한참동안 시를 읊조리다가 따뜻한 술 한 잔을 마시고 떠났다. 길에서 독목교(獨木橋)를 만나 오언절구를 지었다. 붕암(鵬岩)에 이르러 수레에서 내렸는데, 바위는 높이가 백 길이고 물은 깊이가 천 길이니 또한 명승지이다. 소요당(逍遙堂)[박하담(朴河淡)]이 통안(通眼)한 곳이다.【당의 주인 또한 삼족당(三足堂)의 벗이다. 성(姓)은 박(朴)이고 이름은 하담(河淡)이다. 일찍 생원시에 합격했지만 은거했다.】 칠언절구를 지었으니, 인 자(人字) 운이다. 저물녘에 소요당에 들어갔다. 박 창녕(朴昌寧)【일찍이 창녕수령을 얻었다.】 효백(孝伯)은 그 이름이 경전(慶傳)[박경전(朴慶傳)]인데 일찍이 나와 더불어 천리 서울 길을 같이 간 친분이 있으며, 또한 동년생(同年生)이다. 서로 알고 지내는 사람 중 가장 친하다. 마침 그의 아우인 당의 주인 경윤(慶胤)[박경윤(朴慶胤)]의 생일이어서 좋은 안주와 맛좋은 술을 밤중에 연이어 대접했다. 우연히 횡 자(橫字) 운의 칠언 절구를 읊었다. 당 아래에는 두어 길[數丈]의 조각돌이 물 가운데에 들어가 있는데 이러한 것은 삼족당에는 있지 않은 것이다. 삼족당은 헌활(軒豁)한 기상이 많고 소요당은 아담한 모습이 깊으니, 두 당의 승경을 대략 말하자면 난형난제(難兄難弟)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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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二日。
朝後過水雲亭。東通三足。西望破岩。岩盤水明。可堪遊玩。午登三足堂。瓦欹桷頹。逕蕪臺荒。前帶深淵。後拱高峯。奇絶則足矣。而亦不堪高風寂寞之嘆矣。【名大有。字。三足名堂。而金其姓也。縱情山水。遺落世事。南冥松溪其友也。】次從叔三字韻一絶。又得高字近體一律徊字五言一絶。移時嘯咏。煖酒一杯而去。路遇獨木橋。吟成五言絶句。下車鵬岩。岩立百丈。水匯千尋。亦名區也。而逍遙堂之通眼處。【堂主亦三足友。姓朴。名河淡。早捷上庠隱。】七言絶句成。人字韻也。日晩入逍遙堂。朴昌寧【曾得昌守】孝伯其名慶傳。曾與余有千里西行之契。亦同年生也。相知最款。適其弟堂主慶胤初度日也。佳肴美酒。夜分連進。偶吟橫字七言絶句。堂下有數丈片石橫入波心。此則三足堂所未有。而三足軒豁氣像多。逍遙雅淡態度深。二堂勝大略言。則難爲兄難爲弟者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