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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611년 10월 22일 / 光海3 / 辛亥
내 용
선사(先祠)에 배알했다. 아침을 먹은 뒤에 응천(凝川)으로 출발했다. 범의리(犯義里)【마을 이름이 좋지 않다.】의 대정(大亭)에서 희로(希魯)[손처약(孫處約)]를 만났는데, 얼마 뒤에 찰방(察訪)이 뒤이어 와서 세 사람이 함께 고개를 넘었다. 듣건대, 강우(江右)의 세 서원(書院)이 선생님【한강(寒岡)】의 이름을 삭적(削迹)했다고 하니,【남명(南冥)을 배사(背師)한 것으로 구실을 삼았다.】 이는 내로(來老)를 청금록(靑襟錄)에서 삭적(削迹)한 것에 대한 맞대응이었다. 성변규(成卞奎)【선생님의 질녀부(姪女夫)이지만 내로(來老)를 스승으로 삼은 자이다.】가 내로(來老)에서 와서 선생님께 고하기를 "내로선생(來老先生)[정인홍(鄭仁弘)]이 ‘아무개는 문인(門人)들을 꾀어내어 글을 올렸으니, 스승을 배척하고 욕보이는 것이 도가(道可)[정구(鄭逑)]【선생님의 자(字)이다.】 같은 자가 없다.’고 하였습니다."하니, 선생님이 답하기를, "스승을 욕보이는 것이 또한 덕원(德元)[정인홍(鄭仁弘)] 같은 자가 없다."라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아! 만약 내로(來老)의 오늘날 일이 아니었더라면 후생 소자(後生小子)들이 어떻게 선생님께서 추향(趨向)을 바르게 한 순수함과 결함을 구분해서 그 옳고 그름을 밝혀 말할 수 있겠는가? 퇴계(退溪)[이황(李滉)]남명(南冥)[조식(曺植)]을 아울러 선생님이라 칭하면서 추모하고 우러러보는 것은 만세토록 변하지 않을 것이다. 이제 저 일로 인하여 그릇됨과 올바름의 시비(是非)가 환하게 명백해질 것이다. 그러므로 배우지 못한 무지한 무리들이 또한 논의가 남명에게까지 이르렀으니, ‘스승을 욕보인 것이 덕원 같은 자가 없다.’는 것은 진정 내가 항상 논설했던 것과 부합된다. 수기암(愁棄岩)을 지났는데, 바위 아래의 맑은 못은 갓끈을 씻을 만했지만 내려가서 한번 씻지 못했으니 또한 수레를 끄는 사람의 길가기 바쁜 마음 때문일 것이다. 저물녘에 승공(承公)【이름은 적(迪)이다. 순사(巡使)를 보좌하는 사람이다.】의 새로 정한 거처에서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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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二十二日。
謁先祠。朝後發向凝川。遇希魯於犯義里【里名不好】大亭下。俄而察訪繼至。三人同行踰嶺。聞江右三書院。削迹先生【寒岡】之名。【以背師南冥爲名】是對削來老靑襟錄之擧也。成卞奎【先生姪女夫。而師來老者。】自來老來。告先生曰。來先生云某也。誘門人抗章。斥師辱師。無如道可【先生字】云。先生答曰。辱師亦莫如德元云云。噫。若非來老今日之擧。則後生小子。何辨先正趨向之醇疪。而明言其是非乎。退溪南冥竝稱先生。而追慕景仰者。萬世不替矣。今仍彼擧邪正是非。暸然別白。故無知不學之徒。亦議及南冥辱師莫如德元者。正合予小子恒論也。過愁棄岩。岩下淸潭可濯纓。未得下臨一嗽。亦牽宦人行忙底意思歟。日暮憩于承公【名迪。巡使裨將人也。】新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