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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611년 9월 6일 / 光海3 / 辛亥
내 용
저물녘에 당으로 돌아왔다. 박경보(朴敬甫)[박유헌(朴惟憲)]가 왔다. 대정(大亭)에서 초청하여 보았다. 이때 강후(康侯)[최흥국(崔興國)]비경(斐卿) 모두 있었다. 박경보가 밤나무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는데 답하지 않고 일어나 왔다. 마을에 공의가 있었으나 강후는 한 마디의 말도 없이 바로잡아 구원하니 이른바 ‘상제(相濟)’라는 것이 이러한 것이었다. 행보 형(行甫兄)의 편지가 어제 왔는데 이것을 변론하기를, 우리 늙은이가 닥쳐 올 일에 대해 스스로 사죄하고 스스로 축하했다. 말이 마치자 나에게 일러 말하기를, "익보(益甫)[곽재겸(郭再謙)]는 찬성(贊成)【노인 정인홍(鄭仁弘)】을 일러 현인을 가지고 현인을 논하는 것은 그래도 되지만 오늘날 선비 된 자가 찬성에도 미치지 못하면서 찬성을 논하는 것은 매우 옳지 않다고 했는데 이 말이 과연 그러한가?"라고 했다. 나는 "찬성을 일러 지난날의 찬성이 아닌데 누가 그를 논하지 않겠는가?"라고 했다. 익보는 부끄러운 기색이 있었다. 또 노장(老莊)을 숭상하는 것을 논함【퇴계(退溪)가 남명(南冥)을 지적한 것이다.】에 나는 "지금 문집을 살펴보면 잘 숨기는 자들은 ‘천(天)’ 같은 문자에 숨기니, 노장을 답습하지 않고서야 법률 밖의 기어(奇語)를 지어내겠는가?"라고 했다. 행보는 매우 옳다고 했다. 나는 "선생이 찬성 노인과 함께 동문수학한 사람으로, 비록 늘그막에 이설(異說)을 세우기는 했지만, 전날 유배되었을 때 선생의 문 앞을 지남에도 나와 보지 않으셨다. 때문에 그가 지금에까지 그를 마음에 품는 것이다. 너무 박절(薄絶)한 것이 아니겠으며 또한 악인을 보고도 길하다 한 것은 무엇인가?"라고 했다. 답하여 말하기를, "나는 또한 일찍이 선생에게 여쭈어보았습니다. 대개 이것들은 소자가 감히 할 수 없는 것이었다."고 했다. 9일에 행중(行仲)의 계정(溪亭)에서 같이 이야기를 나눌 것을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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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六日。
將晩還堂。朴敬甫來。大亭邀見。時康侯斐卿皆在。朴也有言栗木。不答起來。里有公議。而康侯無一言匡救之。所謂相濟者如此類。行甫兄書昨來。辨此。余老來事自謝自賀。語畢。謂余曰。益甫謂贊成【鄭老仁弘】。以賢人論賢人。猶之可也。今之爲士者。不及贊成。而論贊成甚不可云。此說然乎。余謂贊成。非昔日贊成。孰不論之乎。益甫有慚色。又論老莊爲■(祟)祟【退溪指南冥】。余謂今觀文集。善藏者藏於天等文字。非襲老莊。做出律外奇語乎。行甫謂極是。余謂先生與贊成老同門之人。晩節雖有立異。前日謫時。過先生門而不出見。故渠至今啣之。無乃太薄絶。亦如見惡人吉何。答云余亦曾稟先生。大槪此等非小子所敢知也。期以九日同話行仲溪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