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문중 자료 > 일기 > 모당일기(慕堂日記) > 03권 > 1611년 > 5월 > 14일

모당일기(慕堂日記) 리스트로 첫 페이지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마지막 페이지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7+KSM-WM.1600.2726-20150630.065310200001
URL
복사
복사하기

상세내용

상세내용 리스트
날 짜 1611년 5월 14일 / 光海3 / 辛亥
내 용
평명(平明)에 길에 올랐다. 병암(屛巖)아래 물가에서 아침을 먹었다. 기이한 암석이 물에 잠겨 한번 완상으로는 아쉬울 만했다. 병암(屛巖)에서 최동률(崔東嵂)이 명함을 올리고 역마를 요청할 일이 있어, 낮에 부(府)에 들어갔다. 남문(南門) 밖에 희로(希魯)[손처약(孫處約)], 가화(可和)가 우거(寓居)했고 향우(鄕友)들이 우거하는 곳의 인근 객사를 둘러쌓았다. 곧장 회소(會所)로 들어가 비로소 장의(掌儀)를 정했다. 본조(本朝) 성균관 유소(儒疏)를 얻어 보았다. 들였으나 비답하지 않고 물려, 60여 유생들이 묘정(廟庭)에서 통곡하자 사간원에서 계(啓)를 내어 들어가 학업 하라는 뜻으로 돈유하고 제생(諸生)들은 군부(君父)를 협박할 계책으로 삼아 마음을 어지럽히지 말라 운운했다고 했다. 아! 할 만한 일이 없다는 것을 일러 "내하(奈何)"라 하던가? 삼공(三公)들이 논하는 차자(箚子), 제장(諸長)들이 간(諫)하는 말들에 간절하지 않은 것이 없었으나 거의 받아들일 의사가 없었다. 구설(口舌)로 논쟁할 수도 없었다. 나라안일은 쳐다보지도 않고 낮밤으로 마시고 즐기며, 대신들의 아내들은 나날이 한강에 노니니 행로에 건널 배가 없었다. 고사(古史)를 상고해 봐도 이러한 때는 없었다. 밤이 되자 부(府) 사람 손윤남(孫胤男) 공이 보러 왔다. 동성의 친족이었다.

이미지

원문

十四日。
平明登途。朝食于屛嵓下水邊。嵓奇水涵。可惜一玩。有屛嵓崔東嵂呈刺要遞事。午入府。南門外希魯可和同寓。鄕友環寓隣舍。卽入會所。始定掌議。得見朝館儒疏。入不批而退。六十餘儒。痛哭廟庭。而出臺院啓。以敦諭入學之義。而諸生以爲脅迫君父之計。勿爲動心云云。噫。事無可爲者謂之奈何。三公之論箚。諸長之諫說。無不切焉懇焉。而略無聽納之意。難以口舌爭也。國內不爲視事。日夜飮樂。大臣之妻。日遊漢江。行路無舡可渡。考之古史。無如此時。初夜府人孫公胤男來見。姓親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