二月
一日。
陰。謁先祠。行參禮。朝後謁墓。將有南山之行。都諧來談移時去。始聞行甫兄爲李奎文爲輩同聲之辱。江道監司啓聞。五賢一代儒林領袖。不可只於從祀國學文廟。宜令八道州縣學得從祀。遐方之士。有所矜式焉。特命從之。如此事可謂盛擧。
一日。
陰。謁先祠。行參禮。朝後謁墓。將有南山之行。都諧來談移時去。始聞行甫兄爲李奎文爲輩同聲之辱。江道監司啓聞。五賢一代儒林領袖。不可只於從祀國學文廟。宜令八道州縣學得從祀。遐方之士。有所矜式焉。特命從之。如此事可謂盛擧。
| 날 짜 | 1611년 2월 1일 / 光海3 / 辛亥 |
|---|---|
| 날 씨 | 흐리다. |
| 내 용 |
선사(先祠)에 배알했다. 참례(參禮)를 행했다. 아침을 먹은 뒤에 알묘하고 장차 남산(南山)으로 가려하는데, 도해(都諧)가 와서 한참을 이야기하고 갔다. 비로소 행보 형(行甫兄)이 이규문(李奎文) 때문에 시배(時輩)가 한목소리로 하는 욕을 당했다고 들었다. 경상좌도(慶尙左道) 감사가 계문(啓聞)하여 "오현(五賢)은 일대(一代) 유림의 영수들로 국학(國學)과 문묘(文廟)에만 종사(從祀)해서는 안 되고, 팔도의 주현(州縣)의 학당으로 하여금 종사하도록 해야 먼 곳의 선비들이 긍식(矜式)으로 삼을 만한 것이 있게 되니 특별히 따르도록 명하십시오."라고 했다. 이 같은 일이야 말로 성거(盛擧)라 할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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