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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611년 1월 22일 / 光海3 / 辛亥
내 용
머물렀다. 그 때 희로(希魯)[손처약(孫處約)]는 선사재(仙査齋)로 갔다. 사유(士綏)가 고향으로 돌아왔는데, 더불어 할 말이 없으니 한스러웠다. 유백(裕伯)을 잠시 만났으니, 일로 포산(苞山)에 나가는 것 때문이다. 정보(正甫)와 득생(得生)이 수학(受學)하러 동네로 들어왔다. 낮에 정영보(鄭寧甫)상파(上巴)에서 와, 잠시 이야기하고 돌아갔다. 영양(永陽)의 심부름꾼이 남가(南家) 아이의 돌림병을 묻기에 곧장 좋다고 대답했다. 밤에 서리(胥吏)가 와서 안태사(安胎使)를 감독하고 잡역(雜役)을 지대(支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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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二十二日。
留。時希魯向仙査。士綏歸鄕土。無與晤語。可恨。裕伯暫見以事出苞山。正甫得生。受學入洞。午鄭寧甫自上巴來。暫話還。永陽使人問南家兒疫。卽還報好。夜胥吏來。督胎使支待雜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