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문중 자료 > 일기 > 모당일기(慕堂日記) > 02권 > 1610년 > 12월 > 19일

모당일기(慕堂日記) 리스트로 첫 페이지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마지막 페이지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7+KSM-WM.1600.2726-20150630.065310200001
URL
복사
복사하기

상세내용

상세내용 리스트
날 짜 1610년 12월 19일 / 光海2 / 庚戌
내 용
날이 밝기 전에 선사(先祠)에 배알하고, 잔을 올려 고유했다. 날이 밝자 산에 올라 후토(后土)에게 제사지낸 다음 계묘(啓墓)를 고하고 성대한 전(奠)을 차렸다. 묘실을 바라보니, 슬픈 감정을 이루 다 말할 수 있겠는가. 저물녘에 계묘를 마쳤다. 두 널이 모두 썩고, 단지 형체만 있었다. 선비(先妣)의 관은 아래 부분이 무너지고 꺾여 겨우 흙이 살갗에 닿는 것을 면할 정도였다. 자식 된 입장에서 차마 보지 못하는 것이 이보다 더 큰 것이 있겠는가? 애통함이 끝이 없었다. 살고 싶은 생각이 없었으니 어찌 할 바를 모르겠다. (유골을) 옮겨 염할 길이 없었는데, 채정응(蔡靜應)[채몽연(蔡夢硯)]이 대나무 조각을 사용하여 염상(斂床)위에 (유골을) 옮겨 손상되지 않게 했다. 은혜에 감사하여 평생 분골쇄신(粉骨碎身)한들 어찌 보답하리오. 별 뜬 밤에 횃불을 밝혀 관을 내렸다. 여러 친족과 벗들은 돌아갔지만, 나는 묘 곁에서 밤을 새웠다. 이날 수성의 향약꾼 22명, 남촌의 향약꾼 3명, 인동인 1명【박유문(朴有文)의 종】, 하기인(下基人) 4명, 희로(希魯)[손처약(孫處約)]의 사람 3명, 동네사람 5명, 내이(內二) 사람인 목수와 따라온 사람 18명이 석회를 다지고 나머지 사람은 계묘(啓墓)했다.

이미지

원문

十九日。
未明。謁先祠。告由設奠。大明上山。祠后土次告啓墓。設盛奠。■■■(大明再)泉之室其爲哀感可言哉。將夕啓墓畢。兩柩盡腐。只有形體。先妣之棺。下體頹折。僅免土膚。爲人子不忍見者。孰有大於此。痛哭罔極。無以爲生。罔知所爲。移斂無術。蔡靜應親自用竹片。移斂床無弊。感恩。平生粉骨。何報。星昏明火下棺。諸族友歸。過夜墓側。是日守約軍二十二名。南約軍三名。仁同人一名。【朴有文奴】下基人四名。希魯基人三名。洞人五名。內二人。木手隨從十八名築灰餘啓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