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로 제사에 참석하지 못했다. 아침을 먹은 뒤에 병을 무릅쓰고 영해부사(寧海府使) 성안의(成安義)와 영덕수령(盈德首領) 이대기(李大期)와 잠깐 이야기를 나누고 동(洞)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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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二日。 感冒未參祭祀。朝後扶病。暫話成寧海安義李盈德【大期】而還洞。
주석
성안의(成安義) : 1561(명종 16)∼1629(인조 7). 조선 중기의 문신·의병장.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정보(精甫), 호는 부용당(芙蓉堂). 익동(翼仝)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윤(胤)이고, 아버지는 참봉 적(績)이다. 어머니는 노사영(盧士英)의 딸이다. 정구(鄭逑)의 문인으로 1591년(선조 24)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했다.이듬해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홍문관정자(弘文館正字)로서 창녕에서 의병을 모집, 곽재우(郭再祐) 휘하에서 활약했다. 영남조도사(嶺南調度使)가 되어 유성룡(柳成龍)으로부터 제세(濟世)의 재간이 있다는 찬사를 받았고 그 뒤 사친(事親 : 어버이를 모심.)을 이유로 1600년 영해부사(寧海府使)로 나아가 4년 간 선정을 베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