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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606년 3월 30일 / 宣祖39 / 丙午
내 용
선생(先生)께서 머물렀다. 이날은 국기(國忌)로 술자리를 열지 않았다. 선생께서 말하길, "오늘은 매우 조용하니 이 또한 하나의 다행이다."고 했다. 『심경(心經)』을 논하며 밤에 등불을 밝히고 이야기를 했다. 행보(行甫)[서사원(徐思遠)]가 가르침을 청하고 이어서 나를 불러 자리를 같이 했다. 선생께서 나에게 이르기를 "인생이 얼마나 되겠느냐! 생전에 이 좋은 일을 해야 하고 나이가 많다고 해서 스스로 포기하지 말아라. 위나라 무공(武公)은 90세에 경계하는 시를 지었고 주나라 무왕(武王)은 70세에 단서(丹書)를 받았다.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더라도 좋다."라고 하시면서 거듭 권면하고 자상하게 여러 번 말씀을 하시면 그치지 않았다. 행보도 근래에 점점 처음과 같지 않다며 경계를 했다. 가르쳐주시고 깨우쳐 주신 마음은 지극한 정성에서 나온 것이나 내가 매우 혼미하고 꽉 막혀서 늘 하고자 했으나 하지 못했다. 아마도 맹자(孟子)가 말한 자포자기라는 것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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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三十日。
先生留。是日國忌不設酒。先生曰。今日甚從容。是亦一幸也。論心經。夜設燈話。行甫請敎。因邀余同坐。先生謂余曰。人生幾許。生前便做此好事。無以年老自棄。武公九十作戒。武王七十受丹書。雖朝聞道。夕死亦可。勉勉循循。累言不已。行甫亦以近來。漸不如初爲戒。其喩掖警覺之誠。出於至誠。而某甚昏塞。每欲而不能。殆孟子所謂自棄者。

주석

1) 위나라 무공(武公)은 90세에 경계하는 시를 지었고: 《국어(國語)》를 살펴보면 “무공(武公)은 나이가 95세였는데도 오히려 나라에 경계하기를 ‘경(卿)으로부터 이하로 사장(師長)과 사(士)에 이르기까지 만일 조정에 있는 자들이면 내가 늙었다고 하여 나를 버리지 말고, 반드시 조정에서 삼가고 공손히 하여 서로 나를 경계하라.’ 하였고, 마침내 의계(懿[抑]戒)의 시(詩)를 지어 스스로 경계하였으며, 〈빈지초연(賓之初筵)〉 역시 무공(武公)이 과오를 뉘우치고 지은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그렇다면 그 문장력이 있고 능히 간하는 말을 받아들여 예(禮)로써 스스로 방비했음을 알 수 있다. 위(衛)나라의 다른 군주들은 족히 여기에 미칠 자가 없었다. 그러므로 서(序)에 이 시(詩)를 무공(武公)을 찬미한 것이라고 하였는데, 지금 그것을 그대로 따른다. (按國語컨대 武公이 年九十有五로되 猶箴儆于國曰 自卿以下로 至于師長士히 苟在朝者는 無謂我老而舍我하고 必恪恭於朝하여 以交戒我하라하고 遂作懿戒之詩以自警하며 而賓之初筵도 亦武公悔過之作이라하니 則其有文章而能聽規諫하여 以禮自防也를 可知矣라 衛之他君은 蓋無足以及此者라 故로 序에 以此詩爲美武公이어늘 而今從之也하노라.) 출처: 『詩經』「抑」, 국풍, 위(衛), 기오(淇奧) 2)주나라 무왕(武王)은 70세에 단서(丹書)를 받았다: 단서(丹書)는 《대대례(大戴禮)》에 보인다. 경(敬)은 하나를 주장하고 다른 데로 감이 없음을 이르고, 태(怠)는 게으르고 함부로 함이다. 멸(滅)은 망함이다. 의(義)는 천리(天理)의 공정함이요, 욕(欲)은 인욕(人欲)의 사사로움이다. 종(從)은 순탄함이다. (丹書는 見大戴禮하니라 敬者는 主一無適之謂요 怠는 惰慢이라 滅은 亡也라 義者는 天理之公이요 欲者는 人欲之私라 從은 順也라) 출처: 『소학집주(小學集註)』 「내편(內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