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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605년 7월 6일 / 宣祖38 / 乙巳
내 용
몸이 매우 좋지 않아 남아서 조섭하려 했는데, 여러 벗들에게 뒤쳐졌다가 홀로 가기엔 더욱 무료할 것 같아 병을 무릅쓰고 억지로 따라 함께 갔다. 서행가(徐行可) 무리 10명과 강을 건너 촌점(村店)에서 아침을 먹었다. 듣기에 행보(行甫)[서사원(徐思遠)] 형은 앞서 떠난 지 10리도 채 되지 않았다 한다. 사도곡(沙陶谷)의 정수(亭樹)에 들어가니 행보는 이미 와서 쉬고 있었고, 여러 벗들과 정자 근처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몸져누워 거의 인사를 살피지 못할 지경이 되었다. 저녁 무렵 서늘해진 기운을 타고 고개를 넘어 한강(寒岡)의 신정(新亭)에 이르렀는데, 선생은 산을 나왔지만 이때 아직 돌아오지 않으셨다. 【선생은 무흘정사(武屹精舍)에서 나오셨다.】저녁에 선생이 상류를 건너는 것을 바라보고 우선 젊은이들에게 시켜 가서 마중하게 했다. 나도 행보와 시내가로 걸어가 선생을 맞이하여 정자로 올라가니 해가 저물었다. 인사를 마치고 선생을 모시고 대화를 나눈 지 오랜 시간이 되자 새 달이 서녘에 걸리고 뭇 별들은 넓게 흩어져 있었고, 소나무 그림자가 어른거리고 시내가 돌에 부딪혀 소리가 나니, 마치 천상에 앉은 듯 했다. 강가 산에서 솟은 구릉[岡]이 거의 천 척(尺)에 달했는데, 이곳을 ‘한(寒)’이라고 이른 것은 사방에 소나무[蒼髥]가 빽빽이 서서 울창했기 때문에 ‘선한(先寒)’의 뜻을 취한 것이 많았으니, 이는 선생이 스스로 해석하신 말씀이다. 선생을 모시고 숙야재(夙夜齋)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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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六日。
氣甚不平。思欲留調。而諸友在後獨行。尤甚無聊。扶病强隨同行。徐行可輩十人渡江。朝飯村店。聞行甫兄去前未十里云。入沙陶谷亭樹。行甫已憩。與諸友話亭下。頹臥幾不省事。將夕乘凉踰嶺。至寒岡新亭。先生出山。時未還矣。【先生自武屹精舍出來。】夕望見先生渡上流。先使少年輩。屨及趍迓。余亦行甫步下溪邊。迎入亭上。時日暮矣。寒喧畢。侍話良久。時新月掛西。星斗闌干。松影婆娑。川聲噴石。如坐中天之上矣。岡起川山。幾至千尺。而謂之寒者。四面蒼髥。直立森森。故多取先寒之義。此乃先生之自解也。侍入夙夜齊。

주석

1) 선한(先寒) : ‘(우선) 추운 뒤에야 소나무가 뒤늦게 시듦을 안다(歲寒然後, 知松栢之後彫也.)’는 의미인 듯. 『論語 ․ 子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