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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605년 6월 21일 / 宣祖38 / 乙巳
내 용
날이 밝자 배를 띄웠다. 금산암(金山巖)에 올랐다가, 곧바로 담심정(潭深亭)에 머물렀는데, 터가 매우 좋았다. 박덕응(朴德凝)[박성(朴惺)]【이름이 성(惺)이고 정랑(正郎)이다.】이 행하지 못한 곳이고, 김중시(金仲時)는 마음을 두었지만, 한훤당(寒喧堂)[김굉필(金宏弼)]의 서원과 사우(祠宇)가 벌써 낙고(洛皐)를 차지했으니, 이곳은 서로 마주보는 땅이므로 외부 사람이 손을 댈 곳은 아니다. 낙고재(洛皐齋)의 아래에서 아침밥을 먹고 낙고재에 올랐다. 마침 박극무(朴克懋)[박광선(朴光先)]【이름이 광선(光先)이다.】가 서원의 유사로서 서원을 수리하고 단장하는 일을 수습하고 있었다. 이 서재는 바로 한강(寒岡)[정구(鄭逑)] 선생을 위해 별도로 마련한 머무르며 완상하는 장소이다. 또한 행와(行窩)를 두려는 옛 뜻이다. 그런데 연꽃은 피지 않았고, 새로 짓는 서재도 완성되지 않았다. 그래서 극무가 선생에게 기한을 늦추어야 된다고 했기 때문에 선생께서 결국 약속 장소에 나오지 못하셨다. (우리는) 이번 행차에 크게 실망했다. 배를 타고 어목정(漁牧亭)으로 올라갔다. 【극무 아버지의 정자 이름이다. 강 어구에 있다.】 나는 곽란(藿亂)을 앓았는데, 어제 밤에는 조금 좋아졌다. 학암(鶴巖) 박군신(朴君信)[박정번(朴廷璠)]【이름이 정번(廷璠)이다.】이 배를 마련하여 강 가운데에서 맞이했다. 어목정을 지나 부리정사(扶犂精舍)【군신의 강가 정자】로 향했다. 두 정자 사이에 극무가 새로 지은 작은 집이 있는데, 깎아지른 바위에 터를 닦았다. 못에 이르니 물위로 드러난 바윗돌이 있었다. 가랑비 내리는 가운데 도롱이에 삿갓을 쓰고 낚싯대를 드리우거나, 달이 밝을 때 배회하며 산보하는 정취는 상상만 해도 견디기 어려웠다. 부리(扶犂)에 이르렀는데, 이곳은 옛날 판서 이장곤(李長坤)의 옛터이다. 위아래를 두루 바라보니, 해봉(海峰)은 들쑥날쑥하고 은하수는 밝게 빛나며, 누각의 높이는 백척(百尺)이고, 형세는 천 길이나 쭉 뻗어, 날개가 돋아 신선이 되어 하늘로 올라간다면 적벽(赤壁)의 소선(蘇仙, 소동파)[소식(蘇軾)]에 기필할 만했다. 곽행원(郭行源)[곽효종(郭宗孝)]【이름은 효종(宗孝)이다.】과 곽길원(郭吉源)[곽종경(郭宗慶)]【이름은 종경(宗慶)이다.】이 자식에게 시켜 편지를 들고 찾아뵙게 했다. 별 뜬 밤에 노를 저어 물길을 거슬러 어목정으로 향했다. 극무가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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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二十一日。
平明。放舟。登金山巖。直次潭深亭。基最好。朴德凝【名惺。正郎。】之所未果。而金仲時之方留意。而寒喧堂書院祠宇。已占於洛皐。則此乃相望之地。非外人下手處也。朝飯于洛皐下。登洛皐。適朴克懋。【名光先】以書院有司。方㭘〖拾〗修裝之事矣。此齋。乃爲寒岡先生。別設留賞之所。亦行窩古意也。蓮花不開。新齋未就。克懋退期于先生。故先生不果赴約。此行大失望。登舟上漁牧亭。【克懋大人亭名。在江口。】余得藿亂。昨夜暫蘇。鶴巖朴君信【名廷璠】設帆。來迎于水中。過漁牧亭。將向扶犂精舍。【君信江亭】兩亭間。有克懋新築小齋。斷巖開基。臨潭有磯。細雨中。簑笠垂竿。月明時。徘徊散步之趣。想得難堪。至扶犂。此古李判書【長坤】之舊墟也。通望上下。海峰參差。明河照耀。樓高百尺。勢直千尋。羽化登仙。必於赤壁之蘇仙矣。郭行源【名宗孝】郭吉源。【名宗慶】使其子持■〔書〕來見。星昏。掉舟遡流。向漁牧亭。克懋先待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