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문중 자료 > 일기 > 모당일기(慕堂日記) > 01권 > 1601년 > 2월 > 7일

모당일기(慕堂日記) 리스트로 첫 페이지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마지막 페이지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7+KSM-WM.1600.2726-20150630.065310200001
URL
복사
복사하기

상세내용

상세내용 리스트
날 짜 1601년 2월 7일 / 宣祖34 / 辛丑
날 씨 따뜻하다.
내 용
치재(致齋)했다. 진양(晉陽) 이순훈(李純勛) 공이 상산(商山)에서 찾아왔기에 외차(外次)에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밤에 의논이 이학가(李學可)의 정거(停擧)가 풀리는 것에 관한 일에까지 이르렀다. 【그는 종신토록 정거의 처분이 내려진 상태이다.】

이미지

원문

七日。
溫。致齋。晉陽李公純勛自商山來訪。暫話外次。夜議及李學可解停事。【終身停擧。】

주석

1) 이학가(李學可) : 이종문(李宗文, 1566∼1639)은 본관은 전의(全義), 자는 학가(學可), 호는 낙포(落浦)이다. 교위(校尉) 경두(慶斗)의 아들이다. 1588년(선조21) 생원이 되고,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서사원(徐思遠) 손처눌(孫處訥) 등과 팔공산(八公山)에서 의병을 모집, 서면대장(西面大將)이 되어 활약했다. 그 후 초유사(招諭使) 김성일(金誠一)의 추천으로 현령(縣令)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