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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AC+K06+KSM-WM.1857.4717-20140630.00000001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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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860년 6월 1일 / 哲宗 11 / 庚申
내 용
이른 아침에 우 아(宇兒)에게 편지를 쓰고 겸하여 옷 꾸러미를 순철(順哲)을 통해 부쳤으니 다행을 어찌 말로 다 하겠는가? 채 아(蔡兒)의 병세가 어제 저녁부터 조금 약효가 들어 설사 증세가 조금 멎었고, 또 소변도 잘 보니 다행스럽다. 오후에 하상(河上)의 인편으로 우 아의 편지를 받았는데, 지난 달 20일에 보낸 것이었다. 사옹 형(士翁兄)이 6월 도목정사(都目政事)에 들어갔다가 돌아왔는데,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아마도 형제가 모두 떠나게 된 피해가 없지 않은 것 같다. 한양 소식으로는 지난 달 2일에 왕서자(王庶子)가 요절 하였다 하니 매우 참혹하다. 그리고 북쪽의 소란스러운 일은 별사(別使) 임백형(林百亨)이 그의 집에 편지로 통보하기를 한 층 더 곱절이 되었다고 했다. 또 7일부터 혜성(彗星)과 같은 꼬리별이 1경(更) 동안 있다가 서쪽으로 잠겼고, 16일 밤에 이르러서는 술 방(戌方)에서 보이던 꼬리별이 신 방(辛方)의 헌원성(軒轅星) 위로 옮겼는데, 북극성과의 거리가 48도(度)였으며, 꼬리에서 나는 광채가 전과 다를 바 없었다. 마른 바람[旱風]이 괴상하고 하늘에서는 한 방울의 비도 없는 지 이미 5개월에 이르렀기에 이후의 추수를 생각 해 보면 흉년으로 결딴남을 면치 못할 것이다. 듣기에 정경(正卿) 이하의 관원들은 각 곳의 제단에서 기우제를 지내었고, 중외(中外)의 흉년으로 시끄러운 모습이 매우 위태하고 두렵다. 또 8월 20일에 신문(新門) 안 대궐로 이어(移御)하고자 한 것 때문에 이제야 막 공사 감독을 하였는데, 목수 한 명이 철정(鐵釘) 하나를 훔쳐 술집에 판 사건이 생겼다. 이후 포교(捕校)가 그를 잡아 간 것 때문에 성내에 거주하는 여러 목수들이 포도청(捕盜廳)에 모두 모여 문을 부수고 종사관(從事官)들을 난타하고는 전에 갇힌 목수를 데리고 일시에 도망갔다. 대신(大臣)들은 이 극변(極變)을 조정에서 듣고는, 포졸을 보내 다만 4명만 잡아 우선 기시(棄市)하게 했다. 또 한 여인이 사사롭게 유감을 가지고 칼을 품고 포장(捕將)의 집에 들어가서 찌르려고 하다가 도리어 기시를 당했다. 또 무뢰배들이 중촌(中村)의 신행(新行) 가마를 빼앗아 훤한 낮 큰 도시 가운데서 그 신부를 겁탈했는데, 옆에서 보던 사람들이 그 자리에서 우두머리를 때려 죽였고, 나머지 몇 사람도 모두 기시 당했다고 한다. 듣기에 우려와 탄식을 이길 수 없다. 또 함풍제(咸豊帝) 시를 외는 자도 있었다.【家國休分二物看。國將何恃保家難。尋魚沙鳥非尋水。戀草村羊不戀山。仙界碧桃春浩浩。霽天明月海漫漫。與民同樂吾無計。一棹淸風萬古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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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六月
初一日。
早朝裁書宇兒。兼衣封付之於順哲。■〔幸〕何可言。蔡兒病勢。自前夕微有藥效。泄症少息。且小便亦利。是可幸也。午後河上便。得見宇兒書。乃前月二十日發也。士翁兄臨六政而歸。未知有甚事故。而似不無兄弟竝發之害也。京耗前月初二日王庶子之夭折。甚慘。北騷別使林百亨通書於其家。倍一層。又自初七夜。尾星如彗。一更西沈。至十六夜。戌方所見尾星。移於辛方軒轅星之上。距極四十八度。光彩尾亘。與前無異。旱風乖常。天無一點雨。已到五月。念後秋事未免辦凶。聞正卿以下。祈雨各壇。中外之嗷嗷爻象。甚危怖。且以八月念日。欲移御新門內大闕。今方董役。而木手一名。盜一鐵釘。賣於酒廛。爲捕■〔校〕所執。城內居諸木手等。都集於捕廳。撞破門戶。亂打從事官。與前囚木手。一時逃去。大臣以極變聞于朝。發捕只捉四名。爲先棄市。又一女人挾私憾。懷劍入捕將家欲刺。反棄市。又無賴之徒。攘奪中村新行轎子。白晝大都之中。㥘其新婦。傍觀卽地打殺其魁。餘數人亦皆棄市云。聞不勝憂歎。又有誦咸豊帝詩者。【家國休分二物看。國將何恃保家難。尋魚沙鳥非尋水。戀草村羊不戀山。仙界碧桃春浩浩。霽天明月海漫漫。與民同樂吾無計。一棹淸風萬古閒。】