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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AC+K06+KSM-WM.1857.4717-20140630.00000001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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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860년 4월 23일 / 哲宗 11 / 庚申
내 용
가뭄의 난리가 날로 심해졌다. 앞들에 나가 보니 비록 혹 지금까지 이앙(移秧)한 곳이 있더라도 날이 뜨겁기가 이와 같으니 3, 4일을 보전하기가 어려우니 심은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보기에 몹시 고민스럽고 고민스럽다. 가동(家僮)이 부중(府中)에서 돌아왔다. 용안육(龍眼肉) 1량5전을 전했다. 엄 의(嚴医)가 보낸 것이었다. 저녁부터 3전을 다려 채 아(蔡兒)에게 복용시켰다. 채 아(蔡兒)의 설사 증세가 또 시작되었다. 기생충을 다스리는 일로 여러 날 육즙(肉汁)으로 원기를 보충하지 않아 원기가 계속 줄어들었으니 설사를 막는 일로 극도로 머리가 무겁다. 가질(家姪)이 어제 저녁에 노동서원(魯東書院) 면회소(面會所)에서 돌아왔다. 전하기를, "수령 엄돈영(嚴敦永)이 향회(鄕會)에서 감영에 글을 올려 제음(題音)이 도착한 데까지 이른 것을 크게 미워하여 11인을 형벌을 주고 5인을 형틀을 씌워 옥에 가두었습니다."고 했다. 크게 세변(世變)에 관련된 것이니 이것이 어찌 우리 고을에 이전에 있었던 일인가. 들으니, 면내(面內)에서 일제히 부(府)에 들어갔다고 하는데, 우리 마을에서도 한 사람으로 색책(塞責)하여 진작 기별하도록 했다. 저녁에 유곡(酉谷)의 부고를 전하는 사람이 왔다. 이번 21일에 사형(査兄)이 그 동생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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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二十三日。
旱騷日甚。出往前坪看之。雖或有及今移秧處。而日熱若是。則難保三四日。種亦何益。見甚憫憫。家僮歸自府中。傳龍眼肉一兩五錢。嚴医所送也。自夕煎三錢服蔡兒。蔡兒泄症又發。以治蟲之故。累日不用肉汁補元。元氣積敗。其防泄。極爲頭重。家姪昨夕歸自魯東面會所。傳主倅嚴敦永。大憎鄕會之至於呈營得題到付。加刑十一人。枷囚五人云。大關世變。此豈吾鄕前古所有之事耶。聞面內一齊入府。吾村亦以一員塞責。使之趁卽通奇。夕酉谷訃使來。今卄一日査兄喪其弟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