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문중 자료 > 일기 > 김중휴일기(金重休日記) > 01권 > 1860년 > 1월 >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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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AC+K06+KSM-WM.1857.4717-20140630.00000001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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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860년 1월 26일 / 哲宗 11 / 庚申
날 씨 아침에 바람 불고 춥다.
내 용
신평빈(新坪賓)과 만옥(萬玉) 금우(金牛)를 종가전(鍾街廛)에 보내 다시 혼구(婚具)를 사오도록 했다. 저녁에 주서(注書) 홍영조(洪永祚) 자(字) 치석(穉錫)이 찾아왔다. 양동(良洞) 석사(碩士) 이재함(李在諴)이 또 방문했다. 류 감역(柳監役)이 내일 집에 돌아간다고 수차례 전갈하여 저녁에 가서 전송했다. 밤에 신평빈(新坪賓)과 혼구(婚具)와 문기(文記) 매만졌다. 새벽에 만옥(萬玉)을 보내고 어수선해 잠을 자지 못했다. 들으니 인동(仁同)의 동락서원(東洛書院)의 통문(通文)이 한양에 왔다. 글 뜻은 만회당(晩悔堂) 장우경(張遇慶)을 그 자손이 본 서원에 배향(配享)하고자 한다는 것이었다. 여헌(旅軒) 본손(本孫)으로 보면 만회(晩悔)는 이미 동성(同姓)의 선배이고 또 여헌(旅軒)의 문하(門下)이니 비록 혹 배향을 막더라도 이와 같이 어긋나게 하지는 않아야 할듯하다고 했다. 강원도(江原道) 철원(鐵原) 유생(儒生) 20여 원이 본부(本府)의 완산이씨(完山李氏) 네다섯 집이 본래 미천한 사람들인데 영평궁(永平宮)에 의지하여 삼소(三所)를 소통하고자 했다. 이것은 큰 절목이므로 장차 임금께 상소하고자 한양으로 올라왔다. 오늘 저녁에 영평궁(永平宮)에서 많은 궁예(宮隷)가 나와 숫자를 막론하고 구타하여 결박해 갔다고 한다. 들으니 매우 해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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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二十六日。
朝風寒。出送新坪賓。及萬玉金牛於鍾街廛。更貿婚具。夕洪注書永祚。字穉錫來訪。良洞李碩士在諴又訪。柳監役。將以明日還家。有數次傳喝。故乘暮往餞。夜與新坪賓。磨勘婚具文記。曉送萬玉。紛擾未眠。聞仁同東洛通文。來到京中。其辭意。以晩悔堂張遇慶。其子孫。欲配享於本院也。以旅軒本孫觀之。晩悔旣是同姓先輩。且旅軒門下。則雖或防享。似不必若是乖張也。江原道鐵原儒生二十餘員。以本府完李四五家。自來微賤之人。近托永平宮。欲通三所。以此有大支節。將欲籲 御上來。今夕自永平宮。夥出宮隷。沒數毆打結縛去云。聞甚駭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