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문중 자료 > 일기 > 김중휴일기(金重休日記) > 01권 > 1860년 > 1월 >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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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AC+K06+KSM-WM.1857.4717-20140630.00000001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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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860년 1월 21일 / 哲宗 11 / 庚申
날 씨 아침에 몹시 춥다.
내 용
이른 아침에 편지를 써서 사동(寺洞)으로 올라갔다. 몇 가지 과물(果物)을 부조했다. 낮에 강면규(姜冕奎) 영감과 상사(上舍) 오 모(吳某)가 찾아왔다. 오랫 동안 술을 함께 수작하며 파적(破寂)했다. 강(姜) 영감이 말하기를, "일찍이 영성군(靈成君) 부(傅)를 보았는데, 영성(靈成)이 진사(進士)로서 일찍이 외숙(外叔)을 따라 진주(晉州)의 임소(任所)에 갔을 때 애꾸인 기생이 있었는데 자못 미모가 있었습니다. 또한 다모(茶母)는 온 얼굴이 얽었고 추하여 보고서 놀렸습니다. 밤에 다모가 왔는데 차마 쫓을 수 없어 함께 안고 잤습니다. 그 뒤에 영성(靈成)이 등제(登第)하여 수의(繡衣)로서 영우(嶺右)로 갔는데 떨어진 옷과 깨진 갓을 쓰고 애꾸 색기(色妓)를 찾았습니다. 그 어머니가 저녁밥을 하였는데 보고서 ‘박 진사(朴進士)님입니까?’하니, ‘그렇다.’고 하였습니다. ‘어찌해서 의관(衣冠)이 이 지경에 이르렀는가?’ 하니, 답하기를 ‘운수가 궁하고 집안이 망해 남쪽으로 흘러 다니다가 할미의 딸을 만나고자 왔다. 할미의 딸은 어디 갔는가?’고 하였습니다. 할머니가 말하기를 ‘딸은 책방수청(冊房隨聽) 때문에 갔는데 내일이 곧 사또의 생신입니다. 관가에 들어갔으니 오래지 않아 올 것입니다. 진사(進士)님은 그 아이 방에 들어가 조금 기다리시오.’라고 하였습니다. 얼마 있다가 그 딸이 왔는데 어머니가 은밀하게 말하기를 ‘경성(京城) 박 진사(朴進士)인데, 걸인의 행색을 하고 너를 찾아왔다. 지금 너의 방에 있다.’고 하니, 딸이 말하기를, ‘저는 만나고 싶지 않습니다. 어머니가 내 방에 들어가 내 상의를 내어 오십시오.’라고 했다. 그 어머니가 말하기를, ‘정의(情誼)가 있으니 어찌 보지 않고 돌려보낼 수 있을 것이냐. 너는 잠깐 들어가 보아라.’라고 하였습니다. 딸이 얼굴을 붉히며 성질을 내며 나가버렸습니다. 영성(靈成)이 주인 할머니에게 말하기를 ‘나는 가네.’라고 하니, 할머니가 ‘날이 이미 저물었고 저녁밥 때가 되었으니 가더라도 밥을 먹고 가기를 바랍니다.’라고 했다. 영성(靈成)이 사양하고 나왔습니다. 다시 지난날의 다모(茶母)를 찾아갔습니다. 그 집을 몰랐는데 문득 우물가에서 막 물을 길어 가는 그녀를 만났습니다. 아래의 동이에 물을 옮겨 붓고는 절하며 말하기를 ‘박 진사(朴進士)님은 어디에서 오시는 겁니까? 소녀를 따라 오십시오.’라고 하였습니다. 그냥 따라가 보니 몇 칸의 작은 집에 방에는 한 조각 자리도 없었으니 그 군색함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자리를 빌리고 불을 얻어 대접하는 것이 극치를 다하여 옛 정 그대로 할 뿐이었습니다. 내어오는 음식이 비록 박했으나 먹을 만하였습니다. 그 남편이 누구인지를 물으니 ‘사령(使令)입니다.’라고 하였고, 하는 일을 물으니 ‘지금까지 다모(茶母)를 합니다.’고 하였습니다. 이어 작별하고 일어나니, 그녀가 눈물을 흘리며 말하기를, ‘소녀가 진사님을 이별한 후로 어렵게 입을 옷을 하나 마련하여 상자 속에 넣어 두었습니다. 비록 가시더라도 이 옷을 입고 가셔서 저의 사모하는 마음을 잊지 마십시오.’라고 하였습니다. 영성(靈成)이 말하기를, ‘너의 어려움이 이와 같은데 무슨 나를 입힐 힘이 있었는가?’라고 하니, 그녀가 말하기를, ‘이것을 만든 지 이미 지금에 10년이 되었습니다. 비록 저 같은 천하고 추한 사람이 어찌 감히 일야(一夜)의 정을 바랄 수 있었겠습니까. 또한 하물며 진사님은 떨어진 옷으로 이곳에 오셨으니 더욱 입기에 긴요하실 것입니다.’라고 하고서 직접 입혀 주고 마당 밖으로 전송하였습니다. 이튿날 영성(靈成)이 주관(主官)의 수연(睟宴)을 관찰하고자 아헌(衙軒)의 후면으로 들어갔는데 여러 기생이 모두 모여 벌여 앉았으므로 지난날의 애꾸 미녀 기생 앞으로 가 남초(南草)을 빌려 한 번 빠니 그녀가 얼굴이 붉어지며 뺨을 밀치고는 방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얼마 후에 종인(從人)이 출도(出道)를 외치니 모인 열읍(列邑)의 수령(守令)이 문득 살풍경(殺風景)이 되었습니다. 이어 읍사(邑事)를 처리한 뒤에 다모(茶母)를 올려 행수기(行首妓)로 삼고 포백(布帛)을 상으로 주었으며 색기(色妓)를 강등시켜 다모로 삼았습니다. 특별이 성토하려고 했으나 그 어머니가 옛정을 잊지 않았으므로 용서해 주었다고 합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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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二十一日。
朝甚寒。早朝裁書上寺洞。賻數種果物。午姜令冕奎吳上舍來訪。移時酬酢破寂。姜令言曾見靈成君傅。靈成以進士。嘗隨外叔往晉州任所時。有眄妓。頗有色。又茶母一面縛而麤。見而戱之。夜茶母來。不忍逐之。與之同抱。其後靈成登第。以繡衣往嶺右。以弊衣破冠。訪所眄色妓。其母炊夕飯。見之曰朴進士主乎。曰然。曰何爲衣冠至此之境也。答云命窮家敗。轉轉南流。欲訪嫗女而來。嫗女何往。嫗曰。女爲冊房隨聽。明日卽使道生辰。入官家。不久出來。進士主入渠房少竢之。俄而其女來。母密言京城朴進士。爲丐乞樣訪汝。至今在汝房。女曰。予不欲見之。母氏入吾房。出吾上衣來。其母曰。情誼所在。豈可不見而送之。汝暫爲入見。女勃勃帶怒而出去。靈成謂主嫗曰。予去矣。嫗曰。日已暮。夕飯已及。雖去。䭜而去。是望。靈成辭而出。更訪前日茶母。不知其家。忽遇於井邊厥女方汲水去。注目下盆而拜曰。朴進士主。從何來此。願隨少女來。試隨往。則數間矮屋。房無一片席。其窘可知。而厥女借席乞火。極致舊情而已。進飯雖薄。可口。問其作夫。則曰使令。問其所役。則至今茶母。仍作別起。厥女眷眷下淚曰。小女自別進士主。艱備一襲衣。藏在笥中。雖去。著此去。無忘吾戀戀■■■■■(不忘之情也)之情也。靈成曰。汝之艱窘若此。而有何衣我之力乎。女曰。製此已十年于玆矣。雖如我賤麤之人。豈敢望一夜之情。且況進士主。弊弊至此。尤爲緊著。自其手著之。送之庭外。翌日。靈成欲觀主官睟宴。入衙軒後面。群妓咸萃列坐。故進前日所眄色妓前。乞南草一吸。其女面色發怒。批頰而入房中。俄而從人呼出道。■(入)會中列邑守令。便殺風景。因區處邑事後。陞茶母爲行首妓。賞以布帛。色妓降爲茶母。別欲聲罪。而以渠母之不忘舊誼。恕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