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문중 자료 > 일기 > 김중휴일기(金重休日記) > 01권 > 1860년 > 1월 >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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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860년 1월 12일 / 哲宗 11 / 庚申
날 씨 바람 불고 찬 날씨가 조금 풀렸지만 또 안개 기운이 있다.
내 용
오늘 몇 곳의 인사를 하려고 양동(良洞) 이 주서(李注書)에게 말을 빌렸다. 문득 주망(注望)이 나왔으나 이루어지지 않았다. 바야흐로 애타고 고민스런 때에 류 침랑(柳寢郞)이 직소(直所)에서 들어왔다. 말을 빌려 타고 사동(寺洞)에 갔다. 영은(永恩)문형(文衡)이 모두 나왔으나 보지 못했다. 훈장(訓將)이 여러 날 공무로 고달파 객을 사양하고 산정(山亭)에 누워있어서 부득이 편지를 써서 수차례 헛되이 돌아온 뜻을 대략 펴 감목(監牧)에게 부쳤다. 돌아오는 길에 참판(參判) 김응균(金應均)을 찾아보고 또 회동(會洞)으로 가 정 영부(鄭領府)를 뵙고 이번 15일 차대(次對)에서 다시 잠조(潛祖)의 절혜(節惠)를 주달해 줄 것을 청했다. 이 합하(閤下)의 답은, "자주 주달하는 것은 극도로 외람된 일이 되니 우선 기다리십시오."라고 했다. 그의 뜻이 있는지 모르고 나도 감히 번거롭게 간청할 수 없어 다만 변함없는 은혜만을 부탁하고 왔다. 날이 이미 어두웠다. 아침밥이 마침 입에 맞지 않아 억지로 몇 술만 먹었더니 저녁 후에 기운이 모자라 견디기 어려웠다. 대개 영부(領府)가 애초에 경연에서 아뢸 때 절혜(節惠)를 예대로 베풀 것을 언급하지 않아 예(例)대로 시장(謚狀)을 받지 못했으니 문득 가지 위에 가지가 생긴 것이니 이것을 장차 어찌하겠는가. 어제 사동(寺洞)의 행차는 오로지 이 일을 위한 것이었는데 보지 못했으니 가만히 이 일이 되어가는 것을 생각하건대 또한 몇 개월이나 걸려야 뜻한 대로 될지 모르겠다. 이 어찌 70대의 노인이 감당할 수 있는 일이겠는가. 아침에 이조(吏曹) 아전 경민(慶敏)의 말을 들으니 새 전장(銓長)이 영영 출사하지 않는다고 했다. 나의 앞날의 바람이 또한 산 밖으로 던져졌다. 지금에 와서 빨리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 나를 위한 좋은 계책이겠지만 다시 시상(時相)의 연달(筵達)을 빌리는 것을 결단코 그칠 수 없다. 또한 함군(咸君)의 녹사(錄事)를 갑자기 버리고 돌아가기 어렵다. 나아가나 물러가나 오직 골짜기니 마음이 자연 평안하지 못했다. 밤에 상사(上舍) 조국명(趙國明), 상사(上舍) 권평중(權平仲), 상사(上舍) 오백겸(吳伯謙)이 찾아왔다. 한참 이야기를 나누며 회포를 풀었다. 어제 가서(家書)를 보았다. 상계(上溪) 이만희(李晩熹) 형이 젊은 나이로 요절하였다고 하니 또한 병유(屛儒)의 운기(運氣)에 관련되는 것이니 참혹하고 놀라움을 감당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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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十二日。
風寒稍解。而又有霧氣。今日欲修數處人事。借騾於良洞李注書。忽注望出來未果。方燥憫之際。柳寢郞自直所入來。因借其騾。騎往寺洞。永恩與文衡。俱出外。未見。訓將以屢日公故之憊。謝客臥山亭。不得已修信幅。略伸數次虛歸之意。付監牧。歸之路。訪金參判應均。又往會洞。拜鄭領府。請以今十五日次對。更達 潛祖節惠。此閤所答。數達極涉猥煩。姑待云。未知其意似在。予亦未敢煩懇。只請終始之惠而來。日已昏矣。朝飯適不合。冒只喫數匙。夕後氣乏難堪。蓋因領府之初。筵奏不及節惠之因施。不得循例受謚狀。便支上生支。此將奈何。昨日寺洞之行。專爲此事而未見。竊念此事就緖。又未知費了幾箇月。可如意也。此豈七耋翁。所可堪之事耶。朝聞吏吏慶敏之言。新銓長永不出仕云。吾之前頭所望。亦付山外。到今從速尋鄕。爲吾得計。而復借時相之筵達。斷不可已。且咸君錄事。難可猝然棄歸。進退維谷。心緖自然不平。夜趙上舍國明。權上舍平仲。吳上舍伯謙來訪。移時打話寬懷。昨見家書。上溪李兄晩熹之靑年殀歸。亦關屛儒運氣。不勝慘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