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문중 자료 > 일기 > 김중휴일기(金重休日記) > 01권 > 1859년 > 12월 > 12일

김중휴일기(金重休日記) 리스트로 첫 페이지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마지막 페이지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6+KSM-WM.1857.4717-20140630.000000012253
URL
복사
복사하기

상세내용

상세내용 리스트
날 짜 1859년 12월 12일 / 哲宗10 / 己未
날 씨 아침부터 날씨가 조금 풀렸지만 안개 같지만 안개가 아닌 기운이 성내에 가득하다.
내 용
북악(北嶽)이 항상 흑기(黑氣)로 덮여있으니, 봄 사이에 돌림병이 돌 조짐이 아니겠는가. 매우 이것이 염려스럽다. 류지영(柳芝榮)에게 가서 재종질(再從姪) 명흠(明欽)의 편지를 받았는데, 홍두곡(洪杜谷)의 시호를 내리는 날에 대해 말하면서 ‘치제가묘(致祭家廟)’ 네 글자가 있으니, 그 말은 명심할 만한 것이다. 또 『여지(廬誌)』에 관한 말이 있었는데, 11월 초2일부터 간행을 시작했지만 하상(河上) 아무개가 예법을 숭상하는 사람을 꾀어내어 사방으로 공갈하고 온갖 방해를 했다. 결국에는 은밀한 일이 탄로 나서 각각 기만을 당한 것을 알게 되어 어떤 이는 침묵하여 입을 다물고 어떤 이는 편지를 보내어 일을 권면하니, 그 사람의 낭패가 또한 심하다. 판각하는 일이 혹 반쯤 이루어졌다면 일을 마치는 것은 올해 이내일 듯하고, 인쇄하여 배포하는 것은 내년 봄쯤으로 계획한다고 한다. 아침 전에 하상(河上) 하형(夏亨) 척질(戚姪)에게 위문편지를 부치고, 아침 후에 강 교리(姜校理)에게 말을 빌려 한 곳에 가서 영은(永恩)과 병판(兵判)을 만났다. 병판은 대개 성에 들어온 후 처음 보는데, 여러 차례 말을 주고받아도 이야기가 이루어지지 않으니 그 사람을 알만 하다. 돌아오는 길에 충위(忠衛) 김명각(金明覺)과 참판(參判) 김응균(金應均)을 만났는데, 김 태(金台)가 자못 나를 위하는 마음이 있었지만 또한 어찌 믿을 수 있겠는가? 또 김원방(金元方) 척(戚)을 만나고 반촌(泮村)으로 들어왔다.

이미지

원문

十二日。
自朝日氣稍解。而似霧非霧之氣。彌漫城內。北嶽常蔽黑氣。無乃春間癘氣之兆耶。甚是爲慮。柳芝榮之行。再從姪明欽有書。言洪杜谷宣謚之日。有致祭家廟四字。其言可銘念處也。又有廬誌之說。自十一月初二日始刊。而河上某也誘引尙禮人。四面攻喝。百般沮戱。而畢竟機事綻露。各知見欺。則或含默而捲舌。或委書而勸役。其人之狼狽。亦極矣。刻役或至半功。迄役似在歲內。而印布以明春爲計云。朝前付唁狀於河上夏亨戚姪。朝後借馬於姜校理。往一處見永恩及兵判。兵判蓋入城後初面。而數次接語。酬酢不成。可知其人。回路見金忠衛明覺與金參判應均。金台頗有爲我情念。而亦何可信也。又訪金戚元方而入泮。