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문중 자료 > 일기 > 김중휴일기(金重休日記) > 01권 > 1859년 > 12월 >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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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AC+K06+KSM-WM.1857.4717-20140630.00000001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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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859년 12월 4일 / 哲宗10 / 己未
날 씨 날씨가 추운 것은 조금 풀렸지만 구름 끼고 흐리다.
내 용
진사(進士) 이응규(李應奎)의 아들이 삼년상을 마친 후에 포천(抱川) 고장(古庄)으로 거처를 옮겼는데 승보시(陞補試)로 인해 반촌에 들어와서 찾아왔다. 그 사정이 가여워서 영합(領閤) 김좌근(金左根)이 그를 길렀다고 한다. 인동(仁同) 침랑(寢郞) 장봉규(張鳳圭)가 방문하여 고산(高山) 아래 종렴(宗廉) 씨(氏) 집의 산사(山事)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곧바로 편지를 부쳤다. 저녁에 장 침랑(張寢郞)과 류 감역(柳監役)을 방문했지만 만나지 못해서 그의 반주(泮主)를 불러 망천(忘川)의 편지를 부쳤다. 돌아오는 길에 주서(注書) 이재익(李在翼)을 방문했지만 만나지 못했다. 오동(烏東) 산직(山直)이 사람들을 빌려 솜을 지고 올라와, 가서(家書)를 받아보니, 편안하다는 소식이라 기쁠 만하다. 다만 『여지(廬誌)』 한 조목은 겨우 세 장(章)을 간행하자마자 갖가지 일이 생겨났다. 우천(愚川)의 숙무 척(叔斌戚)〔류주목(柳疇睦)의 자(字)〕이 효(孝)를 다하게 되니 말 잘하는 객이 와서 설득하여 중거(中擧)를 잠시 정지하였고, 또 도회(道會)를 정월 18일로 정했다고 하니, 매우 통탄스럽다. 그렇다면 우리 집안이 간여할 필요가 없을듯하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가질(家姪)이 안영(安營)의 세의(歲儀)를 구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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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初四日。
日寒粗解。而雲陰。李進士應奎之子闋制後移居抱川古庄。因陞補便。入泮來訪。其情勢可矜。金領閤左根生之云。仁同張寢郞鳳圭來訪。說到高山下宗廉氏家山事。卽付書。夕往訪張寢郞及柳監役。未遇。招其泮主。付忘川書。回路訪李注書在翼。未遇。烏東山直貰人。負綿上來。得見家書。安信可喜。而但廬誌一款。纔刊三章。支節層生。愚川叔斌戚爲致孝。緩頰客來說。仲擧姑停止。又定道會於正月十八日云。極爲可痛。若爾則吾門不必干預。而未知何以爲之也。家姪安營歲儀覓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