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문중 자료 > 일기 > 김중휴일기(金重休日記) > 01권 > 1859년 > 10월 >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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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AC+K06+KSM-WM.1857.4717-20140630.00000001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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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859년 10월 4일 / 哲宗10 / 己未
날 씨 날씨가 조금 맑다.
내 용
책보(冊寶)를 들이는 것과 존숭(尊崇) 습의(習儀)에 참여하는 것 때문에 서리(書吏)의 고목(告目)에 의하여 동 틀 새벽에 일어났다. 촛불을 밝히고 세수 하고 머리를 빗고는 세 푼의 장반(醬飯)으로 요기한 후 율관청(律官廳)에 갔다. 여러 동료들이 늦은 이후 모이기를 마쳤는데, 제조(提調)가 출발하기를 기다렸다가 그와 더불어 연여(輦轝)를 모시고 함께 궐내로 들어갔다. 도제조(都提調)와 모든 당상관들이 곧장 들어갔기 때문에 그들과 함께 하지 못했다. 책보를 인정전(仁政殿)에서 받드는 데, 위의(威儀)와 범절(凡節)이 마치 임금이 계실 때와 같았다. 오랜 시간 유차일(油遮日) 아래에 서쪽 방향으로 줄지어 섰다. 여러 동료들과 의막(依幕)에서 담배 한 대를 피웠고, 여러 동료 각기 집에서 아침밥을 갖추어 들어왔으나 나처럼 집이 없는 객은 다만 사서 요기하는 괴로움밖엔 길이 없을 뿐만 아니고, 새벽 머리에 세 푼의 요기밖에 못한데다가 8일간 음식을 전폐한 뒤 끝이라 기운이 떨어져 견디기 힘들었다. 소매에서 약간의 건어물 썬 것을 내어 먹었으나 목이 말라 그만 먹었다. 조금 뒤에 책보를 살핀 이후 다시 내려갔다. 제조 이하의 관원은 다시 전정(殿庭)으로 가서 식경(食頃)동안 무릎을 꿇고 앉아 홀기(笏記)를 듣고, 마치자 또 앞서 앉아 있던 의막으로 갔다. 배고프고 피곤할 즈음에 한기(寒氣)가 또 닥쳐서 일어나 걸으며 시간을 기다렸다. 조금 뒤 도청 서리(都廳書吏)가 와서 신패(申牌)로 당상(堂上) 이하는 또 전정을 향하라고 했다. 습의에 참석 했다가 물러나니 해가 이미 저녁이 되었다. 궐문을 나와 지름길을 따라 곧장 숙소로 향해 오니, 피곤하고 나른하여 근력을 수습할 수 없었다. 조복(朝服)을 벗어 배하인(陪下人)에게 주고, 영직(英直) 놈을 시켜 급히 장반(醬飯)을 사오게 했다. 먼저 장물[醬水]을 마셔 갈증을 푼 다음 요기했다. 베개에 누워 자려고 했는데, 유곡(酉谷)의 주서(注書) 권노연(權魯淵)이 궁벽한 이곳으로 나를 방문했다. 자신에게 간절한 것이 없지 않았으나 그 성의가 감사하다. 때문에 오랜 시간 응접하고 보냈다. 주모[主娼]는 일이 있어서 행주(幸州)로 갔고, 영직 놈은 말의 등창을 씻으러 가서, 홀로 빈 방에 앉아 있으니 생각이 쓸쓸했으나, 다만 다행인 것은 뱃속이 편안해졌고, 설사 기운이 다 나은 것이다. 행여 이로 인해 부묘(祔廟)와 존숭하는 날을 탈 없이 잘 치르지 않을까? 축천탕(縮泉湯)을 또 달여서 복용했다. 오늘 궐 안 모두 모인 곳에서 괴질(恠疾)이 사그라지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으니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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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初四日。
日氣少晴。以冊寶內入及尊崇習儀之參。依書吏告目。曉頭起坐。燃燭巾櫛。䭜三分醬飯。往律官廳。諸同僚晩後畢會。待提調發行。與之陪輦轝。同入闕內。都提調及一堂上直入。故未與之同。捧冊寶於仁政殿。威儀凡節。若殿坐時。移時列立油遮日下向西。諸同僚依幕去吸草一竹。諸僚各家。具朝飯入來。而如余無家之客。非徒買䭜之苦無其路。曉頭三分之䭜。八日廢飯之餘。氣乏難耐。袖出如干乾魚片啖之。而喉渴而止。俄而冊寶鑑後更下。提調以下復往殿庭。跪坐食頃。聽笏記訖。又向前坐依幕。飢困之際。寒氣且逼膚。起步而待時。俄而都廳書吏來報。申牌堂上以下。又向殿庭。參習儀退。日已夕矣。出闕門。從徑路直向旅舍來。萎薾莫可收拾筋力。脫朝服。給陪下人。使英漢急買醬飯。先飮醬水解渴。隨而䭜。倚枕欲眠。酉谷權注書魯淵訪我於窮僻處。不無自己上所懇。而其誠可感。故移時酬接而送之。主娼有事作幸州行。英漢洗馬瘡。獨坐空室。意思蕭索。而但幸腹中安穩。泄氣快祛。或可因此無故行祔廟尊崇之日耶。縮泉湯又煎服。今日闕內都會之地。聞恠疾向殘。是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