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문중 자료 > 일기 > 김중휴일기(金重休日記) > 01권 > 1859년 > 9월 >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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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AC+K06+KSM-WM.1857.4717-20140630.00000001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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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859년 9월 29일 / 哲宗10 / 己未
날 씨 날씨가 또 전날과 같다.
내 용
오늘은 곧 존숭(尊崇)하는 첫 번째 습의(習儀) 날이고, 또 각양의 의장(儀仗)을 받들고 여러 당상관(堂上官), 낭관(郎官)들이 대궐 안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나는 아침 전에 설사로 혼절하여 인사불성 상태였다. 영직(英直) 놈을 시켜 붕어[鮒魚]와 메기[鼉魚]를 사와서 한꺼번에 달여 반 사발을 마신 후에 원기가 조금 돌아왔다. 그러나 뱃속에 곡기(穀氣)가 없어서 숙소 안주인에게 떡국[餠粥] 한 그릇을 끓여오게 했다. 겨우 서너 숟갈 떴는데, 위장(胃腸)의 기운이 크게 변하여 목구멍으로 음식이 내려가지 않아 또 구역질 하는 증세가 생겼다. 신음하며 쓰러졌는데, 도감 서리(都監書吏)가 내가 꾀병을 부리는 줄 의심하여 와서 당상관이 그들에게 부과(付過)했다고 전해주었다. 내가 억지로 일어나 앉았는데, 드러난 나의 병든 형상을 보고는 아무 말 없이 조리 잘 하라고 하고는 갔다. 나의 형상이 거의 반 귀신같았음을 알만하다. 저녁 이후에 또 물고기 즙을 마시고 또 떡국을 반 그릇 남짓 먹었는데 모두 무슨 맛인지 알지 못했다. 또 구역질이 나기에 간신히 토하는 것을 참고 마셨다. 밤에 또 설사를 했으니 이 증세가 필경 어떤 지경에 이를지 알 수 없을 것 같다. 가마를 타고 조금씩 내려가는 것이 옳은 방법이 될 것이나 설사가 멎기 전에는 근력이 실로 가마 안에서 버티기 어려울 것 같으니 어찌하겠는가? 주모[主媼]가 수시로 반촌(泮村)에 들어가기를 청하였고, 바깥주인인 위장(衛將)이 오늘 저녁에야 비로소 찾아왔다가 돌아갔으니 속히 짐을 꾸려 보내고자함을 알겠다. 밤에 또 설사를 했는데 스스로 위장의 기운을 헤아려 보니 매우 허하고 냉하여 당장 과위(過胃)에 쓰는 화제(和劑)를 쓰고 싶었으나 우선 의논할 의원(醫員)이 없으니 또한 어찌하겠는가? 김 훈장(金訓將)의 답서를 보니 별로 중요한 말은 없었다. 감목(監牧)이 석류(石榴) 두 개[塊]를 보내주었으니 병자의 입맛을 돋우기에 매우 적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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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二十九日。
日氣又如前。今日卽尊崇初度習儀。且陪各樣儀仗。諸堂郞入大內云。余於朝前水泄昏倒。不省人事。使英漢。買鮒魚及鼉魚。合煎。飮半椀後。元氣少回。而腹裡無穀氣。使內主作餠粥一器。纔喫三四匙。胃氣大變。不得下咽。又生嘔逆症。涔涔倒了。都監書吏疑我佯病。來傳堂上之付過渠輩。予黽勉起坐。示其形現病狀。無辭善調理去。可知形貌之幾乎半鬼也。夕後又飮魚汁。又喫餠粥餘半器。都不知味。且逆胃艱辛忍吐而飮。夜又水泄。似此症樣。畢竟未知至於何境。莫若乘轎寸寸下去之爲得。而泄未息之前。筋力實難持支於轎內。奈何。主媼時時有入泮之請。外主衛將今夕始來見而歸。可知其欲速治送也。夜又水泄。自量胃氣極虛冷。當用過胃之劑。姑無可議之醫。亦奈何。見金訓將答書。別無緊關言。監牧送石榴二塊。病口甚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