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문중 자료 > 일기 > 김중휴일기(金重休日記) > 01권 > 1859년 > 9월 >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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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AC+K06+KSM-WM.1857.4717-20140630.00000001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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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859년 9월 19일 / 哲宗10 / 己未
날 씨 아침에 구름 끼고 흐리다.
내 용
이른 아침 가마를 타고 장동(長洞)으로 가서 이 태(李台) 집안의 상(喪)에 조문을 했다. 금관복(金冠服)의 여러 피복 건들에 관해 물으니 홍상(紅裳), 홍삼(紅衫), 후수(後繡), 제구(祭屨) 4건(件)이 부족하여 부득이하게 이현(泥峴)의 승지(承旨) 최우형(崔遇亨)을 찾아갔다. 그에게 이 4건을 빌려달라고 청하니 교리(校理) 신철구(申轍求)가 이미 빌려갔다고 했다. 장차 흉배(胸背)도 빌릴 곳이 없어서 8냥으로 새것을 샀는데, 주머니도 빈 처지에 비록 부득이한 데서 나온 것이라고는 하나 고민됨이 깊다. 진사(進士) 김여용(金汝用)이 숙소로 찾아왔고, 반주(泮主) 또한 수차례 찾아왔다. 괴질(恠疾)에 관한 소식은 더러는 평양(平壤)송도(松都)에서부터 퍼지고 만연하여 한양까지 오게 된 것이라 했다. 그리고 더러는 이야기하기에, 서강(西江)의 뱃사공[蒿工] 등의 꿈에 한 노인이 와서 내일 낮에 필시 푸른 봇짐을 이고 있는 한 여인이 서쪽에서 와서 강을 건너기를 청한다면 엄준한 말로 거절하라고 말했다 한다. 과연 다음날 오후에 어느 한 여인이 강을 건너기를 청하자 뱃사공 등은 모두 완강히 거절했는데, 여인이 기어이 건너고자 하면서 5민(緡) 돈을 내어 뱃삯으로 주자 뱃사공 수졸 무리들이 뱃삯이 후한 것을 탐하여 배를 출발시켰다. 배가 물 가운데 쯤 이르자 여인이 이고 있는 봇짐을 빼앗아서 열어 보니 모두 해바라기[葵花]와 질경이[芣蕾]와 같은 씨들이 들어있었다. 그것을 물속으로 던져버리니 여인이 대경실색을 하며 또한 물로 투신하였는데, 이 때문에 괴증(恠症)이 강촌(江村)으로부터 크게 치성하여 상한 사람이 무수하다고 한다. 이는 진실로 허망한 이야기라서 어찌 믿을 수 있겠는가. 여용이 돌아갈 적에 홍상, 홍삼, 후수 등의 물건을 부탁하였으나 또한 어찌 믿을 만하겠는가? 객지에서 벼슬살이 하는 사람이 사사건건 심란하여 마음이 흔들리기가 마치 바람 앞의 깃발과 같다. 만일 제반 공고(公故)들이 모두 지나면 다음 달 초순(初旬) 이후가 될 것이다. 터럭 한 가닥도 검은 것이 없으니 깊게 탄식한 들 어찌하겠는가? 또 영직(英直)을 흉배 값을 출급하는 일로 남문(南門) 밖으로 보내었는데, 종일 오지 않았다. 도로에 시체가 쌓여 가는 이러한 때를 당하여 천리 밖의 여관에서 종과 주인이 서로 의지하며 지내는 상황에 우려됨이 이르지 않는 데가 없다. 사람을 사서 탐문하려 보냈는데, 갑자기 저물녘에 들어왔느니 그 기쁨을 말하자면 기뻐서 미칠 지경이라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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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十九日。
朝雲陰。早朝乘轎。往長洞。問李台閤內喪故。問金冠服諸件。則所乏紅裳紅衫後繡祭屨四件。不得已往訪崔承旨遇亨于泥峴。請借四件。言申校理轍求已借去云。且胸背亦無借處。以八兩買新件。空槖之地。雖出於不已。而爲憫則深。金進士汝用來訪旅次。泮主亦數次來見。恠疾之奇。或自平壤松都。而彌滿上來。或云西江蒿工等。夢一老翁來言。明午必有戴靑袱一女人。西來請渡。峻辭拒之。果於翌日午後。有一女人請渡。蒿工等合辭牢拒。女人期欲渡之。出五緡銅爲船價。蒿■■〔師輩〕。貪於船價之厚。發船。至中流。奪其所戴袱視之。則皆葵花芣蕾種。投水中。女人大驚失色。亦投水中。因恠症自江村大熾。傷人無數云。是固不經之說。何足取信也。汝用之歸。託紅裳紅衫後繡等物。亦何可信也。客地旅宦之人。事事心亂搖搖。若風中之旌。若過諸般公故。而至來月初旬後。便一毛無黑。浩歎奈何。且英直以胸背價出給事。送南門外。終日不來。當此積屍道路之際。千里旅館。奴主相依。其爲憂慮。無所不至。買人送探。忽乘昏入來。其喜可論。方可謂喜而欲狂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