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문중 자료 > 일기 > 김중휴일기(金重休日記) > 01권 > 1859년 > 9월 >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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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AC+K06+KSM-WM.1857.4717-20140630.00000001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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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859년 9월 11일 / 哲宗10 / 己未
날 씨 맑다.
내 용
이른 아침 입직(入直)했다. 족질(族姪) 문흠(文欽)을 광화문(光化門) 밖에서 보내니 서운하고 암담한 회포가 없지 않다. 동료 정기덕(鄭基德)이 회동 대신(會洞大臣)이 복을 누리는 이유에 대해 말하길, "대신(大臣)의 친산(親山)은 시흥현(始興縣) 아왕리(阿旺里)에 있는데, 장차 묘막(墓幕)을 세우려고 하여 60냥으로 그 산 근처 이 생(李生) 소유의 추목(楸木)을 사서 사람을 시켜 베게 했다. 그러자 그의 장자인 판서(判書) 기세(基世)가 편지로 대신에게 고하며, ‘다른 구릉의 나무를 사서 우리 산 묘막을 만드는 것은 혐의가 없지 않습니다. 물러나 베지 않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라고 했다. 대신은 그의 말이 옳다 여겨 즉시 벌목소(伐木所)에 사람을 보내 그들에게 나무을 베지 말라고 시켰다. 나무의 주인인 이 생이 와서 그 이유를 물으니 대신이 말하기를, ‘그대가 구릉의 나무를 파는 것은 어려움을 견디지 못했던 처사였으니 내가 나무를 사서 묘막을 세우는 것은 남의 불행에 인한 것이라는 혐의가 없지 않다. 이미 벤 나무는 마땅히 운송할 것이나 아직 베지 않은 나무는 다시 베지 않을 것이다.’ 라고 했다. 이 생이 말하기를, ‘벤 나무는 3분의 1도 채 못 되니 어찌합니까? 만일 그러하다면 그 벌목한 수효를 헤아려 마땅히 가격을 돌려드릴 것입니다.’ 라고 하자 대신이 말하기를, ‘어째서 반드시 그러하겠는가? 물건의 값은 내 이미 잊어버렸으니 그대는 이에 대해 혐의를 갖지 말라. 다시 세우는데 추목을 쓴다면 어찌 그대 처지에 좋은 일이 되지 않겠는가?’ 라고 하고는 남은 가격을 받지 않았다. 그래서 다른 곳의 이미 베어놓은 재목을 사서 묘막을 세웠다. 대신의 연세가 올해 77세인데도 자주 묘소에 갔고, 성묘를 한 후에도 부모님을 그리는 마음을 금하지 못하여 묘소의 전후좌우를 돌며 슬퍼하였으니 그는 이미 탄탄대로[坦道]를 이룬 것이다. 또 그 산의 청룡(靑龍) 밖 멀지 않는 곳에 어떤 사람이 보이지 않는 곳에다가 투장(偸葬)을 하였는데, 산의 이치 상 마땅히 투장을 금지하여 파서 가기를 기다려야 하나, 영관(營官)에 송사(頌辭)하여 독굴(督掘)하게 하지 않았으니 그의 마음 씀씀이가 숭상할 만하다. 대신은 80년 해로(偕老)하여 중뢰연(重牢宴)도 지냈고, 연전(年前)에 상처(喪妻)했다. 세 명의 아들이 있는데, 맏이는 곧 기세이고, 둘째는 기년(基年)인데 음직(蔭職)으로 목사(牧使)를 지냈고, 셋째는 기명(基命)인데 음직으로 군수(郡守)를 지냈다. 장손 범조(範朝)는 문과(文科)에 등제(登第)하였고, 아우 헌용(憲容)은 음직으로 참판(參判)을 지냈으며 나이가 현재 70이다. 조카 기○(基○)는 또한 문과에 등제하여 청현직(淸顯職)을 지냈다. 한 집안의 융성함은 이 시대를 통틀어 드문 일이다." 라고 했다. 괴질(恠疾)이 점차 번져 앞집이나 뒷집이나 할 것 없이 곡성(哭聲)이 이어지니, 천리 밖 집 떠난 객의 처지에 마음이 동하지 않을 수 없다. 하인을 사동(寺洞) 김 감목(金監牧)에게 보내 그로 하여금 구급제(救急劑)를 지어 보내게 했으나 만나지 못하고 돌아왔다. 척종질(戚從姪) 원방(元方)이 저물녘에 찾아와서 몇 가지 긴히 부탁을 하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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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十一日。
晴。早朝入直。■〔送〕族姪文欽於光化門外。不無悵愔之懷。同僚鄭基德■〔言〕會洞大臣享福之由曰。大臣親山。在始興縣阿旺里。將建墓幕。以六十兩買其山近李生楸木。使人伐之。其長子判書基世。書告大臣曰。買他邱木。而作吾墓幕。不無嫌意。退却不斬似好。大臣然其言。卽刻送人於伐木所。使之勿斬。材主李生來問厥由。大臣曰。子之賣邱木。不堪艱苦之致。而吾之買立墓幕。不無因人不幸之嫌。旣伐之木。當運送。未伐之木。不可更伐。李生曰。所伐不滿三分一。奈何。若爾則計其伐。當還價。大臣曰。何必然。價物吾已忘之。君無嫌焉。復立爲楸木。豈非爲君地好事耶。因不受價。買他舊材立幕。大臣年今七十七。數往墓所。省墓後不禁風樹之感。回回墳域左右前後。已成坦道。又其靑龍外不遠地。有人偸埋於不見之地。而山理當禁■待其掘去。不使營官督掘。其用意可尙。大臣八十偕老經重牢。年前喪耦。有三子。長卽基世。次基年蔭牧使。次基命蔭郡守。長孫範朝登第。有弟憲容蔭參判。年今七旬。有姪基亦登第歷淸顯。一室隆盛。傾朝罕有云。恠疾漸至■■〔鴟張〕。前家後家哭聲相繼。千里離家之客。不無動心。起伻寺洞金監牧。使之製送救急劑。未遇而還。戚從姪元方乘昏來訪。有多少緊托而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