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문중 자료 > 일기 > 김중휴일기(金重休日記) > 01권 > 1859년 > 9월 >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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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AC+K06+KSM-WM.1857.4717-20140630.00000001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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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859년 9월 4일 / 哲宗10 / 己未
날 씨 아침에 추위가 심하다.
내 용
아침에 추위가 심하니 머지않아 서리가 내릴 듯하다. 장차 곡식에 해가 있지는 않을까? 이른 아침에 입직(入直)했다. 참봉(參奉) 정기덕(鄭基德)김형집(金亨集) 대신 오늘 아침에 처음 출사(出仕)하였는데, 그 또한 병인년(丙寅年) 생이다. 거주지는 내포(內浦) 면천(沔川)에 있는데, 곧 회동(會洞) 영부(領府) 정원용(鄭元容)의 11촌 조카였다. 이번 가을 8월 임금의 능행(陵幸) 때 헌릉 랑(除獻陵)에 제수되었고, 사은숙배(謝恩肅拜)한지 3일 만에 늙으신 부모를 핑계로 사직 소지(所志)를 올렸는데, 또 3일 만에 감조관(監造官)에 차임(差任)되었으니 바야흐로 시류(時類)의 공명(功名)이라 할 만하다. 그의 말을 들으니 현 용궁 현감(龍宮縣監)인 그의 족제 기영(基永)은 정 영부(鄭領府)의 7촌 조카이며, 그의 부친은 진사(進士)로 일찍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그리고 그의 조부는 밀양 부사(密陽府使)가 되었으나 지금은 계시지 않고, 조모와 모친이 계시는데 오늘 그들을 판여(板輿)로 모시기 위해 고향으로 내려간다고 할 뿐이다. 또 약을 복용하는 일 때문에 담당 당상관(堂上官)이 퇴청(退廳)하기 전에 나왔다. 또 듣기에 서강촌(西江村)에 어떤 괴질(恠疾)이 돌아 급사(急死)한 자가 거의 3~40명이라고 한다.【괴질이 서강(西江)에서부터 나다.】한 의원(韓醫員)이 지어준 소변 약이 과연 효과가 있었기 때문에 그 화제(和劑)를 기록하여 다음날의 자료로 삼는다. 「토슬전(菟膝煎) : 토사자(兎絲子)【주제(酒製)한다.】 ․ 우슬(牛膝)【주세(酒洗)한다.】각기 2전(戔), 백복령(白茯笭) ․ 목통(木通) ․ 생지황(生地黃)【주세(酒洗)한다.】 ․ 적작약(赤芍藥) 각기 1전, 감초(甘草) 잔뿌리 8푼(分), 승마(升麻)【주초(酒炒)한다.】5푼, 청죽엽(靑竹葉) 7편(片). 빈속에 복용하되 10첩(貼)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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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初四日。
朝甚寒。不久似有霜意。將不害稼耶。早朝入直。鄭參奉基德。以金亨集代。今朝始出仕。亦丙寅生人。居在內浦沔川。卽會洞鄭領府元容十一寸姪也。今秋八月陵幸。除獻陵郞。肅謝三日。以親老呈所志。又三日差監造官。方可謂時類功名也。聞其言。今龍宮倅其族弟基永。■領府七寸姪。其父以進士早世。其祖爲密陽府使。而今不在。有祖母與母。今日奉板輿下去云耳。又以服藥次。堂上未退而出。■〔又〕聞西江村有恠疾。暴死殆三四十云。【恠疾自西江】韓醫小便之藥。果有徵效。故記其和劑。俾爲日後憑考。菟膝煎。兎絲子【酒製】。牛膝【酒洗】【各二戔】。白茯笭。木通。生地黃【酒洗】。赤芍藥【各一戔】。甘草梢【八分】。升麻【酒炒。五分】。靑竹葉【七片】。空心服十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