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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AC+K06+KSM-WM.1857.4717-20140630.00000001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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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859년 9월 2일 / 哲宗10 / 己未
내 용
아침에 임금이 금보(金寶)를 어람(御覽)하는 일 때문에 왕의 홍련(紅輦)을 모시고 대궐 안으로 들어갔다. 적봉(赤棒), 홍삽(紅翣)과 내인(內人), 어졸(御卒)들, 크고 작은 기치(旂幟)들이 앞에 나열되어 있었고, 갈도(喝道)를 내세워 대로(大路)를 지나니 망칠(望七) 나이의 내 공명(功名)이 족히 벗들에게 한 번 웃음거리를 제공해 줄 만 한 일이었다. 감목관(監牧官) 김계한(金啓澣)이 집에서 온 편지를 전해주었으니, 이는 그가 한양으로 올라 올적에 우리 집에 들러 받아 온 것이다. 명주 옷 한 건(件)을 이편에 올려 보내 왔으니 매우 다행이나, 아이들의 편지를 보니 계상(溪上)의 택진(宅鎭)이 결국 질병으로 죽었다고 하니 참혹하고 놀람을 견딜 수 없다. 직중(直中)에 있으면서 이른바 한 주부(韓主簿)의 의술인(醫術人)이라는 자를 물어서, 몸소 그의 집을 찾아가 화제(和劑) 하나를 받았다. 그리고 중학교(中學橋) 전 생(全生)의 약국(藥局)에 화제를 보내어 먼저 약 3첩(帖)을 지어 와서 이에 토슬(菟膝)을 달였다. 그래서 오늘 저녁부터 비로소 복용하기 시작했다. 집에 보내는 편지를 지난달 26일에 내었으나 차아(次兒)가 가는 길에 어떤 사고가 있었는지 그 전에 도달하지 못했다. 중간에 필시 문제가 있었을 것이니 염려됨이 적지 않다. 동료 직장(直長) 김형집(金亨集)이 몸의 병으로 사직 소지(所志)를 올려 체직(遞職)되었으니 열흘간 동고동락한 뒤 끝에 섭섭하고 서운함이 사뭇 깊다. 아침에 직장(直長) 김사묵(金思默)을 대궐 안 상서원(尙瑞院)에서 만났는데 같은 길을 가는 동료의 의리 때문에 사뭇 곡진히 돌보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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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初二日。
朝以金寶御覽事。陪紅輦入大內。赤棒紅翣。內人御卒。大小旂幟。羅列於前。喝道過大路上。望七功名。足供知舊人一哂。金監牧啓澣傳家書。蓋上來時歷入受來也。紬衣一件。伊便上來。甚幸。而見兒輩書。溪上宅鎭之。竟不起疾。不勝慘愕。自直中。問所謂韓主簿醫術人。躬訪其家。得一劑。送中學橋全生藥局。先製三帖來。乃菟膝煎也。自今夕始服。家書出於去月卄六。而次兒之行。有何事故。而未達於。其前也。中間必有所以。爲慮不淺。同僚金直長亨集。以身恙呈所志遞改。一旬同苦之餘。薪悵殊深。朝見金直長思默於大內尙瑞院。以同道之誼。頗致繾眷。

주석

토슬(菟膝) : 약재인 새삼의 일종으로 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