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문중 자료 > 일기 > 김중휴일기(金重休日記) > 01권 > 1859년 > 8월 >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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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AC+K06+KSM-WM.1857.4717-20140630.00000001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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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859년 8월 22일 / 哲宗10 / 己未
내 용
이른 아침 도감소(都監所)에 입직(入直)했다. 투자(投刺)하여 담당 당상관(堂上官)들을 뵈려 했는데, 그들은 곧 호판(戶判) 이경재(李景在), 예판(禮判) 정기세(鄭基世), 이판(吏判) 남병철(南秉喆), 공판(工判) 김병국(金炳國), 도제조(都提調) 김영합(金領閤)이었으나 나오지 않아 만나지 못했다. 그래서 삼방(三房)에 인사를 다녔는데, 도청 낭청(都廳郞廳)은 병조정랑(兵曺正郞) 서용순(徐容淳), 부사과(副司果) 홍종운(洪鍾雲)이었다. 그리고 일방 낭청(一房郎廳)은 호조정랑(戶曺正郞) 김상희(金相喜), 예조정랑(禮曺正郞) 정창휴(鄭昌休), 감조관(監造官)은 군자감직장(軍資監直長) 유익환(兪翼煥), 부사용(副司勇) 류방근(柳邦根)이었다. 이방 낭청(二房郎廳)은 공조정랑(工曺正郞) 박이소(朴履韶), 형조정랑(刑曺正郞) 서재원(徐載元), 감조관은 내자시직장(內資寺直長) 김형집(金亨集), 부사용 김중(金重)이었다. 삼방 낭청(三房郎廳)은 광흥수(廣興守) 조병원(趙秉元), 사복시주부(司僕寺主簿) 임승수(林勝洙)【가질(家姪)과 친분이 있다고 한다.】, 감조관은 부사용 윤식(尹栻)【덕산(德山) 출신이고 나와 동갑이다.】, 이원성(李源星)【병인년(丙寅年) 생이다.】이었다. 묘시(卯時)에 모였다가 신시(申時)에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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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二十二日。
早朝入直都監所。投刺謁堂上。卽戶判李景在。禮判鄭基世。■■■(當日見)吏判南秉喆。工判金炳國。都提調金領閤。以不出座未見。修三房人事。都廳郞廳兵曹正郞徐容淳。副司果洪鍾雲。一房郎廳。戶曹正郞金相喜。禮曺正郞鄭昌休。監造官軍資直長兪翼煥。副司勇柳邦根。二房郎廳。工曹正郞朴履韶。刑曹正郞徐載元。監造官內資直長金亨集。副司勇金重。三房郎廳。廣興守趙秉元。司僕主簿林勝洙【與家姪。有親誼云】。監造官副司勇尹栻【居德山。同甲也】。李源星【丙寅生】。卯會申退。

주석

투자(投刺) : 일종의 면회 신청 삼방(三房) : 서장관 가질(家姪) : ‘풍산김씨 영감댁’에 소장된 낙애 김두흠이 쓴『숭재일록』에서, 예천군수 임승수에 관한 기사가 보인다. 김두흠은 김중휴의 조카뻘이고, 또 비슷한 시기에 현풍 현감에 재직하는데, 본 일기의 10월 1일 기사에서 ‘가질이 현풍에서 타던 노새’라는 표현으로 본다면, 이 일기에서 가질은 김두흠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