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문중 자료 > 일기 > 김중휴일기(金重休日記) > 01권 > 1859년 > 4월 >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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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AC+K06+KSM-WM.1857.4717-20140630.00000001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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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859년 4월 1일 / 哲宗10 / 己未
날 씨 전날 밤부터 폭풍이 치고 소나기가 내려 지척을 분간할 수 없다. 다음날 아침 비는 개었지만 바람은 그대로이다.
내 용
전날 밤부터 폭풍이 치고 소나기가 내려 지척을 분간할 수 없다. 다음날 아침 비는 개었지만 바람은 그대로이니, 필시 장마 아니면 한발의 조짐이다. 게다가 들판의 보리 또한 풍해를 입었다. 한양으로부터 사람이 왔는데 전하기를 정월 20일 사동(寺洞) 김 훈장(金訓將) 대부인(大夫人)의 환갑날이라, 당일 큰 잔치를 열어 7일이 되어서야 끝났는데 일금 십만 냥이 들었다고 한다. 교동(校洞) 영합(領閤)이 2월 사이 한적(閑寂)함을 즐기기 위해 잠시 아산 동암(牙山銅巖) 별장을 나오니 원근의 수령들과 시속(時俗)을 쫓아 따르는 사람들이 각각 후한 예물을 가지고 종일토록 몰려들어 소란스러움을 이기지 못하고 지름길로 한양 집에 갈 수 밖에 없었다. 혹 말하기를 정재영(丁載榮)이 논척한 문관 6명, 무장 너덧 명이 모두 교동(校洞) 문객이므로 청입(請入)했다고 하나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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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四月
初一日。
自前夜暴風驟雨。咫尺不辨。翌朝雨霽。而風如故。必爲潦旱間兆朕。且野麥又爲風害。自京來人。傳正月二十日。卽寺洞金訓將大夫人甲日也。自當日大設宴。至七日乃罷。費金十萬云。校洞領閤。二月間取閒寂。暫出牙山銅巖別墅。遠近守令。曁時俗趨附之人。各持厚幣。逐日沓至。不勝紛擾。未免徑入京宅。或云丁載榮之疏斥。文官六人。武將四五人。俱校洞門客。以此請入云。未可知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