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문중 자료 > 일기 > 김중휴일기(金重休日記) > 01권 > 1859년 > 3월 >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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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AC+K06+KSM-WM.1857.4717-20140630.00000001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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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859년 3월 30일 / 哲宗10 / 己未
날 씨 종일토록 바람이 불다.
내 용
마동(馬洞) 족질(族姪)을 그저께 예천(醴泉)으로 보내 위라(位羅) 서원(書員)을 뵙게 했다. 오늘 아침 들으니 안 갔다고 하니 믿을 수 없는 그 사람됨에 크게 탄식했다. 사촌(沙村) 김 형(金兄)이 전하는 한양 소식이 여간(如干)했다. 계속하여 말하기를 의주(義州)의 개시(開市)에 중국인의 무미(貿米) 15두(斗)는 70냥인데, 의주부윤(義州府尹)이 1석(石) 8냥 식으로 안전(眼錢)을 거두어들이도록 정해서 미상(米商)들은 1석 62냥에 가지고 간다고 했다. 이는 실로 우리 동국의 쌀값이 폭등하는 까닭이다. 탄식을 이길 수 있겠는가? 그리고 충주(忠州)김탄(金灘)은 70여 간(間)의 기와집을 지으니 회동령(會同嶺) 아래에 40여 읍(邑)들이 전세(田稅) 대동목(大同木)을 뱃길로 한양으로 들인다고 했다. 요즘 세상에 경장(更張)의 일에 무슨 일이든 폐단이 없겠는가마는 이 폐단은 예상컨대 심각한 골칫거리가 될 것이다. 저녁부터 큰 바람이 불고 비가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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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三十日。
終日風。馬洞族侄君。再昨送醴泉。俾見位羅書員。今朝聞不去。浩歎其人之無信。沙村金兄傳。京耗如干。繼說義州開市。中國人貿米十五斗。價七十兩。灣尹一石八兩式。例定納合眼錢。米商持一石六十二兩去云。此實吾東米價騰踴之致也。可勝歎哉。且忠州金灘。作七十餘間瓦家。將會同嶺下。四十餘邑。田稅大同木水運入京云。今世更張之事。何事無弊。而此弊預爲頭重。自夕大風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