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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AC+K06+KSM-WM.1857.4717-20140630.00000001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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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859년 3월 20일 / 哲宗10 / 己未
내 용
계아(季兒)를 출산한 이후로 식체(食滯) 증세가 있어 오천(浯川)으로 가 평위산(平胃散) 3첩을 지어왔다. 간산(艮山) 주서(注書) 정창동(鄭昌東)한양 소식을 전해왔다. 주상이 이르길, "탐관오리가 멋대로 행하는데, 언론의 직에 있는 자들이 비난하여 탄핵함이 없으니 대간을 파직하노라. 전라도 지평(持平) 정재영(丁載榮)의 상소에 따라 평양감사 김기만(金基萬), 경상감사 심경택(沈敬鐸), 전라감사 조휘림(趙徽林), 안악군수 박문현(朴文鉉), 북평사(北評事) 한진계(韓進棨), 경상좌도사 황종현(黃鍾顯) 등을 모두 탐장(貪贓)으로 올리라!"고 했다고 했다. 요즘 세상사에 마음을 조금 너그럽게 할 수 있으나 동당(東堂)의 복시(覆試)에 든 영남 남인, 권 씨와 홍 씨의 서인들이 어찌 영남의 도를 족히 유지할 수 있겠는가?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봄 안에 영선(瀛選: 홍문관에 뽑히는 것)이 있다고 하는데 또한 알만하다. 정 주서(鄭注書)는 전부터 난치의 질병을 가지고 있는데, 뱃속을 큰 칼로 베는 듯하여 여러 날 죽으려 했다. 끝내 방광에 말뚝을 꽂는 것 같아 의가(醫家)에게 물으니 모두 산증(疝症)으로 처방하였으나 여러 차례 시도에도 효과가 없었다. 문득 어떤 지나가는 사람이 말하기를 "나 또한 이러한 증세가 있어 치료하느라 패가(敗家)했소. 우연히 한 승려를 만났는데 그가 처방해 준 약으로 치료하여 지금은 완전히 나았소. 그 약은 계시(鷄矢) 3두(斗) 【닭 똥】를 온수로 가라앉혀 맑은 물을 취하시오. 또 목맥(木麥) 3두(斗)로 밥을 지어 누룩으로 만들어 세 번 술을 빚으시오. 그리고 그 술이 진해지면 점미(粘米) 반 두(斗)로 다시 밥을 짓고 그것에 청주 3그릇을 넣으면 바로 소주가 되오. 양에 따라 마시면 그 질병이 쾌차할 것이오."라고 했다. 정 주서는 가르침에 따라 시도하고 또 타첩(打疊)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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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二十日。
季兒以産後食滯症。往浯川。製平胃散三帖來。艮山鄭注書昌東。來傳西耗。自 上言。貪吏浪行。在言職者。以無彈爲 譏。罷時臺。全羅道持平丁載榮疏論。箕伯金基萬。嶺伯沈敬鐸。全伯趙徽林。安岳倅朴文鉉。北評事韓進棨。慶尙左道都事黃鍾顯。幷以貪贓上之云。今世之事。稍可寬心。而但東堂覆科之全嶺午人。權洪西人。豈足爲待嶺之道哉。不無慨惋。聞春內有瀛選。而亦可知也。鄭注書。曾前有難醫疾。腹中如刺一大釖。屢日欲死。末乃若揷抹於肪胱。問于宜家。則皆以疝症出劑累試無效。忽有一過人言。吾亦曾有此症。敗家治療。而終不瘳。偶逢一僧。聞方藥治之。今至完人■。其藥鷄矢三斗【鷄糞也】。以溫水。滯而取淸。又木麥三斗。作飯和麴。三圓釀酒。及其酒醲。以粘米半斗。又作飯。入之取淸酒三食器。乃爲燒酒。隨量飮之。厥疾快差云。鄭注書依敎試之。又打疊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