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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AC+K06+KSM-WM.1852.4717-20140630.000000002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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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853년 3월 26일 / 哲宗4 / 癸丑
날 씨 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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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문(通文)을 고쳐 작성하여 재중(齋中)에 유(諭)를 보내 동의를 청했다. 그 글은 다음과 같다. "삼가 아룁니다. 첨존(僉尊)들께서는 사방을 수조(秀造)하는 현자들로 한 나라의 수도에 살면서 인재 배양의 기강이 되고 사림 논의에 저울입니다. 무릇 이 글에 연관관 된 일은 벼슬길에 오른 사람들에게 관계되지 않음이 없습니다. 생(生)들은 선사(先師) 대사(大師) 이 선생(李先生)이 성학(聖學)을 열어 잇고 사문(斯文)의 공을 발휘하셨으니 실로 백세의 종사(宗師)이자 한 나라 모두의 지존(知尊)입니다. 지난 번 유장(儒章)을 한두 차례 받들어 올리자 대신들의 상소가 연이어 진청(陳請)되어, 증작(贈爵)과 책을 인출(印出)하는 포상은 있었으나 혜택을 요약하여 이름을 바꾸는[節惠易名] 의전은 아직 입지 못하였습니다. 어찌 태평성대의 궐전(闕典)이자 많은 선비들의 억울함이 아니겠습니다. 저희들은 이와 같이 함께 논의하여 같은 목소리로 유천(籲天)하고 상소하고자 합니다. 생각건대 귀덕(貴德) 존현(尊賢)들에게 실로 병이(秉彛)가 원근의 사람들과 다름이 없는 것입니다. 삼가 첨존(僉尊)들께서 공의(公議)로 도우시어 특별히 회유(回諭)를 주신다면 즉시 복합(伏閤)하여 작은 정성을 알게 하겠습니다. 전 영남 70년의 고심거리가 하루아침에 풀어진다면 실로 첨존들이 회유(回諭)를 내려주심이요 우리 당의 행복입니다. 삼가 첨존들께서 살펴봐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했다. 이어서 다시 유생을 보내 장의를 만나보니 장의는 같은 재의(齋議)로 장차 공의(公議)를 받들어 시행할 것입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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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二十六日。
晴。改搆通文。送諭于齋中。請謹悉其文曰。伏以僉尊以四方秀造之賢。居一國首善之地。綱紀乎菁莪之化育。權衡乎士林之論議。凡係斯文之事。莫不仰關于賢關生等。先師大山李先生開繼聖學發揮。斯文之功。實是百世之宗師。而一國之共知[尊]也。往者儒章之一再擧置。宰疏之相繼陳請。雖有 贈爵印書之褒。而節惠易名之典。未及蒙施。豈非昭代之闕典。而多士之抑欝者乎。生等玆將合謀同聲以爲籲天。請章之擧。伏惟貴德尊賢。實惟秉彛之■■■無間於遠邇者也。伏願僉尊濟以公議。特賜回諭。俾卽伏閤得徹微悃。使全嶺七十年苦心之事。一朝得伸則實亦僉尊之賜。而吾黨之幸也。伏願僉尊垂察焉。仍遣儒生。復見掌議。掌議答以齋議僉同。將奉公施行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