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문중 자료 > 일기 > 소청일록(疏廳日錄) > 01권 > 1853년 > 2월 > 7일

소청일록(疏廳日錄) 리스트로 첫 페이지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마지막 페이지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6+KSM-WM.1852.4717-20140630.000000002805
URL
복사
복사하기

상세내용

상세내용 리스트
날 짜 1853년 2월 7일 / 哲宗4 / 癸丑
내 용
조반(朝飯) 후에 향교 문 밖에 자리를 마련하여 조사(曺司)는 안동(安東) 유학(幼學) 류택흠(柳宅欽), 의성(義城) 유학(幼學) 이경재(李絅在), 신석호(申錫祜), 경주(慶州) 유학(幼學) 이재숙(李在䎘), 인동(仁同) 유학(幼學) 장경식(張敬植), 공사원(公事員)은 안동(安東) 진사(進士) 김찬수(金璨銖), 의성(義城) 유학(幼學) 신명휴(申命休)를 천출(薦出)했다. 좌중에 나아가 상읍례(相揖禮)를 행했다. 조사(曺司)를 시켜 좌중에 말을 전하기를, "대산선생(大山先生)을 제향(祭享)하는 일이 아직까지 경황이 없어 하지 못한 것은 진실로 오당(吾黨) 모두에게 억울한 것이지만, 특별히 사사로이 일을 벌이는 것이 편치 않습니다. 이 때문에 반드시 어명이 내려지기를 기다려야 하지만, 만약 아래에서 규청(叫請)하지 않으면 어찌 임금의 귀를 움직일 수 있겠습니까? 이번 모임은 실로 소를 써서 상소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이니, 모르겠지만 여러분들의 뜻은 어떠하신지요?"라고 했다. 여러 사람의 뜻이 서로 같아서 소를 올리는 일을 확실히 정했다. 소수(疏首) 삼망(三望)에 안동(安東) 유학(幼學) 김(金), 대구(大邱) 유학(幼學) 최효술(崔孝述), 의성(義城) 유학(幼學) 김양손(金養巽)이 천출되었는데, 수망(首望)은 점을 많이 받은 사람이 되었다. 마침내 소수(疏首) 이하 사람들이 맡을 일을 정하고, 3월 초3일에 함창향교(咸昌鄕校)에서 도회를 열기로 정했다. 각 읍에 통유할 때, 제통(製通)은 안동(安東) 유학(幼學) 이정운(李庭雲), 예천(醴泉) 유학(幼學) 권인하(權寅夏), 사통(寫通)은 의성(義城) 진사(進士) 김제원(金濟源), 유학(幼學) 김노선(金魯善)이 했다. 이로 인해 유생(儒生) 안동(安東) 유학(幼學) 이현(李鉉)을 보내어 소수망기(疏首望記)를 올려서 출발할 날짜를 아뢰었는데, 소수(疏首) 장(丈)이 감히 담당할 수 없다는 뜻으로 정단(呈單)을 사양해서 본손(本孫) 정자(正字) 이돈우(李敦禹)가 다시 가서 힘써 청했다.

이미지

원문

七日。
朝後。設會席於校門外。薦出曺司安東幼學柳宅欽義城幼學李絅在申錫祜慶州幼學李在䎘仁同幼學張敬植公事員安東進士金璨銖義城幼學申命休。出座行相揖禮。使曺司傳言於座中曰。大山先生立享之擧。尙今未遑。固吾黨之所共抑鬱者也。特以私設未安。故必待成命。然苟非自下叫請。則安能動上天之聽哉。今番之會。實爲治疏擧幡之行。未知僉意何如。衆意詢同。敦定疏擧。薦出疏首三望安東幼學金。首望爲多點。遂把定疏下諸任。以三月初三日定發行道會於咸昌鄕校。通諭各邑。製通安東幼學李庭雲醴泉幼學權寅夏寫通義城進士金濟源幼學金魯善。因起送儒生安東幼學李鉉。奉呈疏首望記。告以發行之期。疏首丈以不敢當之意。辭以呈單。本孫李正字敦禹更進敦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