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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800년 12월 12일 / 正祖24 / 庚申
날 씨 맑다.
내 용
대부(大父)가 자제들에게, "헌수(軒壽)의 일은 웃음직하다. 어제 밤에 글을 짓게 하면서, 즉경(卽景)으로 쓰고 문장을 이루도록 하였더니 오래 지난 후 대답하기를 ‘밤이 어두워 보이질 않네[夜黑面見不]’ 라고 하더라." 라고 하셨으니 포복절도 하였다. 『맹자(孟子)』를 읽다가 「진심(盡心)」 편의 ‘(오패(五覇)는) 오랫동안 인의(仁義)의 이름을 빌렸으면서 결국 인의의 길로 돌아가지 않았다.[久假而不歸]’는 구절에 이르자 진사 대부(進士大父)가, "모름지기 가(假)자와 귀(歸)자를 알 수 있어야 한다."고 하였다. 대부는 "옳지." 라고 하셨다. 진사 대부가 이어서 말씀하시길, "내가 가르치는 자들은 모두 둔하고 못났기가 어디에도 비할 데 없지만 그 가운데 문수(文壽)가 더욱 어둡다. 『맹자』를 읽고 부터는 약간은 (문리(文理)에) 통하여 그래도 쇠머리가 흐르는 듯했는데, 물으면 다시 되물으니 장래에 성취가 어떠할 지 점칠 수 없다네. 용석(龍錫)은 그래도 조금 나은데, 초기에는 학문이 크게 진보했었으나 지금에 이르러서는 참 뜻만 같이 않네." 라고 운운하였다. 그리고 그 참에 나에게 남초죽(南草竹)을 주시며, "너는 이것을 가지고 ‘성현(聖賢)의 중(中)’과 ‘자막(子莫)의 중(中)’을 헤아려 재어 보아라." 라고 하였다. 나는 담뱃대를 손으로 받들고는, 대나무 한 가운데를 잡고, "이 곳이 ‘자막의 중’입니다." 라고 하였다. 그리고 또 한 손가락 위에 올려 두고 경중을 헤아려 그 가운데를 잡고, "이 곳이 ‘성현의 중’입니다. 주자(朱子)께서 이른바 ‘중’은 정해진 형체가 없고 때에 따라 있는 것이라고 하셨으니 아마도 이 때문에 선(善)하다고 한 것 같습니다." 라고 하였다. 성열(性悅)이 관례를 치르고 찾아 왔다.

이미지

원문

十二日。
晴。大父顧語子弟曰。軒壽事。可笑。昨夜命作書。以卽景■〔書〕之使成文。良久對曰。夜黑面見不云。堪爲絶倒。讀孟子至久假而不歸。進士大父曰。須識得假字歸字。大父曰。善。進士大父因言。吾所敎者。皆鈍劣無比。文壽尤惛暗。自讀孟子似少通。流頭金。問則問矣。而將來成就未卜如何。龍錫稍勝。初期以大進。到今不如意云云。因賜余南草竹曰。汝以此裁度聖賢中子莫中以進也。余以手奉之。從執竹中曰。此子莫之中也。又措於一指上。度輕重而執其中曰。此聖賢之中也。朱子所謂中。無定體隨時而在者。恐以此曰善。性悅着冠來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