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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800년 3월 23일 / 正祖24 / 庚申
날 씨 맑다.
내 용
아침에 대부(大父)에게 문안을 드렸다. 안악 숙(安岳叔)이 와서 앉아 있다가 나를 보고 측은히 여기며 말하기를 "할 말이 없구나. 이 무슨 꼴인가. 이 무슨 꼴인가. 내 마땅히 즉시 가서 곡해야 했는데, 심경(心境)에 스스로 좋지 못한 일이 있어서 이처럼 곡 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구나."라고 하였다. 이 장(李丈)이 나를 보고 말하기를 "상주는 앉아라. 내 너에게 할 말이 있다 너희 집에는 겸암(謙庵) 류운룡(柳雲龍)과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 형제가 계신 뒤로부터 파가 나뉘어 자손이 번성하면서도 차이가 없었는데, 아우 집안은 환로(宦路)가 저와 같이 성대한데, 형의 집안은 이에 미치지 못한다. 너는 의당 힘껏 심력을 다해서, 저 아우 집안과 서로 비슷하기를 구한다면, 또한 부모를 기쁘게 하는 도리이다. 그 광채가 의당 어떠하겠는가?"라고 하였다. 대부가 웃으며 말하기를 "남을 면려시킬 때는 마땅히 학문으로써 주를 삼아야지, 어찌 과거로 하시오."라고 하였다. 이 장(李丈)이 말하기를 "내가 많은 사람을 살펴보았습니다. 이런 책임을 맡을 수 있는 사람은 네가 아니고 누구겠습니까? 학문은 진실로 마땅히 힘써야할 바이지만, 과거 역시 가문을 부지하는 하나의 방편입니다."라고 하였다. 의원 이경설(李經卨)이 옆에 있다가 말하기를 "이 아이는 반드시 이 장(李丈)의 말처럼 될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내가 「치안책(治安策)」을 읽다가, ‘수국고필상의지세(樹國固必相疑之勢)’라는 부분에 이르러서 ‘고필(固必)’을 ‘상의지세(相疑之勢)’ 위에 붙였다. 이 장(李丈)이 말하기를 "문맥을 보니 의당 ‘수국고필(樹國固必)’이라고 하는 것이 옳다."라고 하였다. 밥을 먹은 뒤에 이 장(李丈)에게 절하고 작별인사를 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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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二十三日。
晴。朝省大父。安岳叔來坐見余惻然曰。無以爲言。此何形狀。此何形狀。吾當卽時往哭。而心境自有不好事。迄此未果云。李丈顧余曰。喪人居。吾語女。汝家自謙厓兄弟。而分派子姓之繁衍。亦無差池 而弟家。則科䆠如彼其盛也。兄家則不及焉。汝宜務盡心力。冀與彼家相方。則亦悅親之道也。其爲光彩當如何哉。大父笑曰。勉人。當以學問爲主。夫焉以科舉爲哉。李丈曰。吾閱人多矣。能任此責者。非汝而誰。學問。固所當勉。科舉亦扶持門戶之一事也。李醫經卨在傍曰。此人必如李丈言。余讀治安策。至樹國固必相疑之勢。着固必於相疑之上。李丈曰。觀其文勢。宜從樹國固必可也。食後拜別李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