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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AC+K06+KSM-WM.1796.4717-20140630.0081102000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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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800년 3월 21일 / 正祖24 / 庚申
날 씨 맑다.
내 용
대부(大父)를 문안하면서 묻기를, "유향(劉向)의 「논산릉서(論山陵書)」에 ‘비록 우(禹)탕(湯)의 덕이 있어도 말손(末孫)인 걸(桀)주(紂)를 가르칠 수 없다.’라는 말이 있으니, 이것은 에 대비시켜 말한 것이며, 또 ‘비록 의 성스러움을 지졌더라도 단주(丹朱)와 같은 아들을 가르칠 수 없다.’라 하니, 이것은 단지 단주만을 거론하고 상균(啇均)을 언급하지 않았는데 이것들은 아직 문법을 깨우치지 못했습니다."라고 하였다. 대부(大父)가 말하기를 "옛 책에 이와 같은 것들이 많은데 단주를 거론하여 상균을 포함했으니, 모두 배와 수레를 만들어 통하지 못하는 곳을 건너게 해주는 것과 같은 뜻이 있다."라고 하였다. 점심 때 금곡 대부(金谷大父)가 사람을 보내어 만나자고 하였다. 이때 안악(安岳)의 이졸(吏䘚)이 길에 빽빽하고 나는 거상(居喪) 중이라 곧바로 가기 어려웠다. 때문에 즉시 가서 편지를 써서 사례하기를 "찾아주시는 후의에 감명을 받지 않음이 없으나, 먼 고을의 군인들이 길가에 어깨를 맞대고 서있는데, 상복을 입고 수질(首絰)과 요대를 차고서 얼굴을 들고 다니기 마땅치 않습니다. 다만 보고 듣는 사람이 놀랄까 두려워할 뿐이지, 어찌 감히 정성스러운 지극한 가르침을 어기겠습니까."라고 하였다. 금곡 조(金谷祖)가 또 답장하기를 "아까 울타리 너머로 보다가, 갑자기 벗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간절하여 외람되게 잠시 머물 것을 청했던 것이네. 지금 이처럼 말하니, 어찌 감히 그대에게 강요하겠는가. 다만 속인들은 대부분 이런 작은 예절을 괴이하게 여기지 않으니, 도를 지키는데 무슨 방해가 되겠는가? 잠시 상의할 일이 있으니 은혜를 베풀어주기를 희망하네." 운운 하였다. 마침내 신을 신고 가서, 저녁까지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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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二十一日。
晴。省大父。問劉向論山陵書。有曰。雖有禹湯之德。不能訓末孫之桀紂。此以桀紂對禹湯而言也。又曰。雖有堯舜之聖。不能訓丹朱之子。此只舉丹朱而不及啇均。此等。文法未可曉。大父曰。古書多如此。舉丹朱以該啇均。有同作舟車以濟不通之義也。午。金谷祖。使人請見。時安岳吏䘚。雜沓於道中。余以凶服難可卽往。以書謝之曰。相訪之厚。匪不銘感。而遠邑軍人。夾道磨肩。絰帶衰衣。不合舉面。惟恐視聽之有駭。敢違殷勤之至誨云云。金谷祖又復之曰。俄者。隔籬而望。頓切停雲之思。猥請暫往。今曰如是。則何敢相强。第俗人多不嫌此等幺麼小節。何妨於守道耶。少有相議事。幸望賜惠云云。遂納履而往。至暮談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