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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AC+K06+KSM-WM.1796.4717-20140630.0081102000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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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798년 9월 15일 / 正祖22 / 戊午
내 용
대인(大人)이 병산서원(屛山書院)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경산 대부(慶山大父)를 만나서 의곡(蟻谷)의 손님이 이미 떠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결국 돌아오니, 신성(申城)의 회문(回文)이 왔다. 쌍절묘(雙節廟)에 시호를 내리는 일 때문이다. 백암(白巖) 선생의 휘(諱)는 제(濟)[김제(金濟)]이고, 아우 농암(籠巖) 선생의 휘(諱)는 주(㴻)[김주(金㴻)]이다. 모두 조선 초에 순절했다. 농암은 옷을 부친 일이 바로 세상에 드러났으며, 백암은 심해(沈海)로 종적을 감추어 세상에 드러내지 않았다. 지금에 이르러 시랑 이익운(李益運)이 그 일을 아뢰니, 임금이 매우 놀라며, 곧바로 가묘(家廟)에 시호(諡號)【충개(忠介)】를 내리고, 친히 제문을 지어 바다 위에서 제사를 지내도록 했다. 대개 세상에 드문 일에 임금의 은전이 내리니 공론은 백세토록 없어지지 않으니, 어찌 믿지 않겠는가. 백암은 옛날에는 호(號)가 없었는데, 대부(大父)가 화천서원(花川書院)의 원임(院任)이었을 때 그가 남긴 시 ‘암마수부천층백(巖磨水府千層白)’의 말에서 골라내니, 그를 높여 백암(白巖)이라고 했다. 이에 세상에 행행했다. 갈전(葛田)안이정(安爾定) 장(丈)이 와서 대인을 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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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十五日【乙亥】。
大人行次屛院。路逢慶山大父。知蟻谷客已發去。遂還。申城回文來。盖以雙節廟宣謚事也。白巖先生諱濟。與弟籠巖先生諱㴻。俱死節於國初。而籠岩寄衣之事。卽爲著。聞白嵓沈海之迹。尢隱晦而不顯。至是李侍郞益運奏其事。上大加驚歎。卽命賜謚【忠介】於家廟。又親製文以祭於海上。盖曠世恩數公論不泯於百世。豈不信㢤。白巖舊無號。大父爲花川院任時。採其遺詩中巖磨水府千層白之語。尊之曰。白巖。遂行於世。葛田安丈【爾定】來見大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