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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802년 5월 10일 / 純祖2 / 壬戌
날 씨 조금 맑다.
내 용
류 진사(柳進士)가 돌아갔다. 식후에 장인을 모시고 덕고(德皐) 류인춘(柳仁春)을 방문했다. 그 아버지는 조그마한 방이 어둡고, 거처가 매우 좁은 곳에 있었다. 산서(山書) 한 권이 그 옆에 있어서 내가 대략 산의 이치에 대해 논했더니, 그가 나에게 통달했다고 말했다. 며칠 후 하외(河隈)[하회]에 갈 것이라고 해서, 편지를 써서 그에게 부쳤다. 이어 나를 위해 술을 찾았는데, 마실 수 없다고 사양하고 곧바로 돌아왔다. 길에서 구명원(具命元) 생원(生員)을 만났는데, 구 송안(具松安) 후손이라고 했다. 잠시 길가의 노송에 기대었다가, 자리를 깔고 앉았다. 구(具)가 말하길, "들은 바에 의하면 자네의 문필이 숙성하다고 하니, 부러움을 이길 수 없다."라고 했다. 이어 대화는 그의 조상 유적에 미쳤는데, "나의 선조가 소재(蘇齋)[노수신(盧守愼)]와 수창한 시와 소 노(蘇老)에게 보낸 답시를 고적에서 찾았습니다. 혹자는 ‘선조가 지은 시가 아니다.’라고 하니, 『소재집(蘇齋集)』을 보면 자세하게 살필 수 있을 것이나 얻어 볼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고 했다. 그리고 나에게 "하회(河回)에는 혹 그것이 있습니까?"라고 말했다. 나는 "없습니다."라고 했다. 구는 "소 노(蘇老)는 선생[퇴계 이황]의 문하이니, 그 모집이 응당 도산(陶山)에 있었을 것입니다."라고 했다. 나는 "소 노는 계문(溪門)[퇴계 문인]이 아닙니다."라고 했다. 구가 "그럼 본래 향사(享祀)하던 곳은 어디입니까?"라고 물었다. 나는 "상주(尙州) 도남서원(道南書院)에 추향했습니다."고 했다. 구가 말하길, "그럼 도남서원에 가서 물어 보겠습니다."고 했다. 드디어 헤어지고 해저(海底) 상리(上里)를 지날 때, 여태섭(余泰燮)유음(柳陰)에 마중 나왔는데, 정성스러움을 극진히 했다. 또 "객은 어디에 갔습니까?"라고 했다. 장인은 "덕고 류인춘은 일가 사람인데, 그를 보기 위해 갔다."고 했다. 여 생(余生)이 말하길, "덕고 그 사람은 비록 ▣. 대조(大祖)의 후손이 이곳에 살고 있는데, 무지몽매함이 평민과 같습니다. 객은 친족의 의리로 가보았으니, 그 사람에게 영광이 될 만합니다." 이어 손을 가지런히 하고 나와, "창졸간에 입에 댈 것이 없으니 매우 서운하게 되었습니다."라고 했다. 장인은 "어찌 서운하겠는가?"라고 했다. 마침내 처가로 돌아와, 장인이 말하길, "나와 여(余) ▣▣▣▣. 여러 대에 이르도록 즐겁게 지내는 것이 한결같고 지금까지 변함이 없다."고 했다. 또 "여씨 문중은 모두 통청(通淸)했으며, 그 가운데 한 집안과는 오래도록 교의를 맺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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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初十日【己卯】
薄晴。柳進士歸。食後陪聘父往訪柳仁春於德皐。其父亦在蝸室漆牕。居處甚狹。山書一卷在其側。畧論山理。吾何有知。渠曰洞達云。自謂數日後。欲往河隈。 遂裁書付之。因欲爲余覔酒。辭以不飮能。卽還。路逢具生員命元。自稱具松安後孫云。少倚路邊老松。班荊而坐。具曰。窃聞此人文筆夙成云。不勝艶笑。因談及其先人遺蹟。曰。吾先祖酬唱蘇齋詩及蘇老答詩得於古蹟。或云。非先祖所作。若見蘇齋集。則可以考出。而無由得見。乃問余曰。河回或有之否。余曰。無矣。具曰。蘇老是先生門下。其集應在陶山。余曰。蘇老非溪門。具曰。然則本享何處。余曰。追享於尙州道南。具曰。然則道院將徃問云云。遂叙別。還過海底上里。余生泰燮出迎於柳陰。盡其▣曲。且曰。客何之。聘父曰。德皐柳仁春卽渠之一家人。爲見其公而去矣。余生曰。德皐其人雖▣。大祖之孫居此。貿貿便同常氓。客主以親族之誼。屈駕往見。可以爲渠生色。因手▣▣(眷眷)而出曰。倉卒無物接口。極爲缺然。聘父曰。豈足缺然。遂還聘家。聘父曰。吾金與余▣▣▣▣。已至累世。而歡意如一。今不變云。又曰。余氏一門皆是通淸。而其中一家爲舊鄕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