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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802년 4월 24일 / 純祖2 / 壬戌
날 씨 맑다.
내 용
밤에 부여 숙(扶餘叔)을 뵈었다. 부여 숙(扶餘叔)이 말하기를, "너의 글이 매우 뛰어하다. 나는 너의 글 조리가 이 정도에 이를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라고 하며 잇달아 말하기를, "형님이 계시면 그 즐거움이 어떠했겠는가. 그런데 결국은 목숨을 연장하여 기다리지 못하였으니 통탄스러움을 말할 수 있겠는가."라고 하고, 또 말하기를, "매번의 제(題)마다 반드시 해제(解題)를 살펴서 지어야 한다. 틈과 힘을 내어 중고(中古) 때의 동인(東人)의 작품을 택하되 「남옥부(南玉賦)」 같은 것을 베끼는 것이 가장 좋다. 대개 한 번 베끼는 것이 열 번 읽는 것보다 낫다."고 하고, 또 말하기를, "사람이 누가 자기 자식을 아끼지 않겠는가마는 그러나 형님이 너에게 기대한 것은 보통보다 훨씬 컸다. 매번 나를 ‘선진(先進)’이라고 부르며 늘 왕래하면서 반드시 묻기를, 우리 아이의 글이 어느 수준에 이르렀는지를 물었는데 지금도 귀에 여전하다. 네가 만약 이것을 명심하고서 노력한다면 효(孝)가 된다."고 하고, 또 말하기를, "과거(科擧)는 문호(門戶)를 지탱하는 물(物)이다. 만약 과거가 아니면 어떻게 양반(兩班)이라 하겠는가. 지금 우리 집안으로 말하자면 여러 대 동안 모두 과거업(科擧業)을 취하지 않았던 것은 대개 과거와 거리가 멀지 않았고 유택(遺澤)이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세대(世代)가 조금 더 내려왔고 벼슬한 분이 점점 멀어졌으니, 과거업(科擧業)을 또한 힘을 다하여 하지 아니할 수 없다. 지난날 젊을 적에 대개 일찍이 이것에 힘쓰면서, 마음으로 대과(大科)는 바랄 수 있는 것이 아니지만 작은 성공은 오히려 힘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지금 이렇게 급제한 것은 실로 생각이 미치지 못했던 것이다. 너는 반드시 착실히 힘써 성취하게 되면 선형(先兄)의 소망을 잇고 지하에 계시는 유명(幽冥)을 위로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혹 하나의 명예에만 급급하여 의리가 아닌 패도(悖度)한 일을 하여 염치를 완전히 잃어버린다면 이것은 정말 안 된다. 그러나 스스로의 도리에 있어서는 반드시 최선을 다해 성공할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고 하였다. 또 정자(程子)가 과거업(科擧業)을 논한 말을 인용하여 말하며 거듭거듭 권면하며, "입신양명(立身揚名)은 또한 효(孝)의 한 가지이다. 그러므로 옛날의 군자들도 이 길로 말미암지 않음이 없었으며 또한 완전히 끊고 금한 적이 없었다. 어찌 과거(科擧)를 소홀하게 보겠는가."라고 하였다. 또 글 짓는 방법을 상세하게 가르치며 안내하며 마지막에 "힘쓰고 힘쓰라."고 하였다. 나는 머리를 숙여 감사드리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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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二十四日【甲子】。
晴。夜謁扶餘叔。叔曰。汝之文詞。甚爲竒特。吾不意汝之詞理至此。因曰。兄主在。則其樂何如。而竟未延待。慟嘆可言。又曰。每題。必審解題而作。爲可。暇力必擇中古東人。如南玉賦。謄之最好。盖其一謄。勝於十讀矣。又曰。人孰不愛其子。然兄主之所期望於汝者。逈出尋常。每以我爲先進。常常往來。必問。吾兒文。至何境也。至今若在耳。汝若體此而亹亹。則孝矣。又曰。科擧者。是扶持門戶之物也。若非科擧。何謂兩班。今以吾家言之。累代皆不取擧子業。盖以去古未遠。遺澤未泯也。見今。世代稍降。軒冕漸遠。擧子業亦不可不極力爲之。昔余眇年。盖甞從事於此。心以爲大科非可望。小成猶或可勉。今此及第。實意慮所不到也。汝須著意勤做。至於決就。則可以繼先兄之所望。而慰幽冥於泉臺之下也。若或急於一名。非義悖度之事。全殁廉耻。則是誠不可。然在我之道。則必要自盡。期於有成也。又引程子論擧業說。申申勉之曰。立身揚名。亦孝之一邊事。是故。古之君子。亦未甞不由此路。亦未甞一切截斷禁沮之。豈視科擧以歇後乎。又以行文之法。諄諄誘掖。末復語曰。勉㫋勉㫋。余垂頭感謝而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