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문중 자료 > 일기 > 하와일록(河窩日錄) > 01권 > 1802년 > 3월 > 19일

하와일록(河窩日錄) 리스트로 첫 페이지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마지막 페이지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6+KSM-WM.1796.4717-20140630.008110200066
URL
복사
복사하기

상세내용

상세내용 리스트
날 짜 1802년 3월 19일 / 純祖2 / 壬戌
날 씨 맑다.
내 용
아침에 은보(殷輔)는 『別洞集(별동집)』을 보여주어 내가 취하여 보니, 점필(佔畢)의 서(序)가 머리에 있었고 눌은(訥隱)의 발(跋)이 그 끝에 있었다. 세계도(世系圖)에는 은보(殷輔) 부자의 이름이 그 속에 있었고 그의 아들 석화(碩和)는 현재 본부(本府) 포도리(捕盜吏)라고 했다. 식사를 한 후 출발하여 신양(新陽)을 지나는데, 대부와 계부께서는 이 원장(李院長)을 내방하려 그의 집으로 들어가셨다. 나는 먼저 가서 소산(素山)에 이르기 전 길가 주점에서 기다리자 잠시 뒤 모두 왔다. 대부께서 이번 걸음에서 김청하(金淸河)에게 담뱃갑 하나를 얻었는데 문득 이 우(李友)에게 빼앗기고 절통(絶痛)해 하셨다. 해가 중천에 이르기 전에 하외(河隈)에 당도하였다. 봄 햇살이 곱고 밝았고, 초목들은 향기를 머금었고 띠를 두른 맑은 냇가엔 만 그루 푸른 솔이 있어 선굴처럼 황홀했다. 들어가 어머님께 절하고 이내 감위(龕位)에 아뢰니 슬픔 마음을 한 층 더 억제하기 어려웠다. 마을의 노소들이 모두 모여 상에 차린 음식을 먹고 마셨다. 저녁에 하양(河陽) 김기형(金器衡) 형을 가서 뵙고 밤에 해저(海底)에 편지를 썼다.

이미지

원문

十九日 【己丑】。
晴。朝殷輔出示別洞集。余取觀之。佔畢序其首。訥隱跋其尾。其世系圖。殷輔父子之名入於其中。而其子碩和。今爲本府捕盜吏云。食後發行過新陽。大父與季父爲訪李院長入其家。余先行未及素山。而待路邊酒家。有頃皆至。大父謂今行得一草匣於金淸河。俄爲李友所攘絶痛云云。日未午抵河隈。春日暄姸。草木含香。一帶澄潭。萬株蒼松。怳然若仙窟。入拜慈闈。仍謁龕位。愴懷又一倍難抑。村中老少咸集啖嚥床需。夕往見河陽金兄【器衡】。夜書海底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