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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802년 3월 11일 / 純祖2 / 壬戌
날 씨 맑다.
내 용
대부(大父)께서는 또 서재에 나가 주무셨다. 진사대부(進士大父)께서 일러 주시며 "내일 네가 변례(弁禮)를 치르는데, 옛 절도에 따라 행할 수는 없어도 『삼가의절(三加儀節)』이 나에게 있으니 네가 가져다 살펴보아라."고 하셨다. 청송(靑松) 재종매(再從妹)가 귀근했다. 아침에 후곡 숙(後谷叔)께서 찾아뵙자 대부께서는 "길아(吉兒)의 이름이 실상보다 지나치니 참으로 염려스럽다."고 하셨다. 숙부께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 아이의 지은 문학이 부(府)를 통틀어 비교해보면, 이 아이만한 자가 드문데, 어찌 그 실상보다 지나치겠습니까?"라고 하셨다. 또 나를 돌아보며 "이제 너를 가문의 희망으로 삼고자하니, 부부형(副父兄)들의 뜻에 따라 힘써 노력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셨다. 『삼가의절(三加儀節)』을 가져오려 했으나 바빠서 하지 못했다. 식사를 한 뒤에 관례를 행했다. 신양(新陽) 이 척조(李戚祖), 지곡(枝谷) 척조(戚祖) 권표(權彪)와 온 마을의 노소(老少)가 모두 모였다. 이 장(李丈)께서 "이 상투는 일단 묶으면 편발로 돌아가기 어려우니, 진실로 눈물을 떨굴 때이다."고 하셨다. 도정대부(都正大父)께서는 "머리에 관을 썼으니 학문으로 채운다면 어찌 좋지 않겠는가?"라고 하셨다. 마침내 감위에 배알하니 남몰래 눈물이 초연히 흘러내렸다. 어머니 또한 새삼 처창해하셨다. 문중에 역배(歷拜)하였는데, 진사대부(進士大父)께서 말씀하시길, "빈소(殯所)에 곡하지는 않지만 치배(致拜)는 해도 된다."고 하셨다. 후곡 숙(後谷叔)께서 말씀하시길 "관(冠)을 바로 하는 데 힘써야 한다. 『전(傳)』에 이르기를 ‘그 관이 바르지 못하면 실망하여 가버린다.’하였으니 가장 척념(惕念)해야 한다."고 하셨다. 도정대부(都正大父)께서 말씀하시기를 "모인 사람들께 안부를 할 때, 눈을 들어 좌우를 돌아보아야 한다. 대저 인사할 때 혹 빠뜨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고 하셨다. 대죽대부(大竹大父)께서 말씀하시기를 "너에게 별도로 훈계할 것이 없구나. 그러나 관을 쓴 자는 많은 책임이 돌아가는 것이니 틀림없이 척념(惕念)해야 한다."고 하였다. 종일 머리가 아팠고 밤에는 다리가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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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十一日 【辛巳】。
晴。大父又出宿書齋。進士大父謂曰。來日汝行弁禮。古節雖不可行。而三加儀節在我。汝可取觀焉。靑松再從妹歸覲。朝後谷叔來謁大父曰。吉兒名過其實。極爲可慮。叔曰。不然。其文學所造擧一府而較之。如此兒者鮮矣。豈過其實乎。又顧余曰。今方以汝爲門戶之望。須用方孜孜以副父兄之意爲可。將欲取來三加儀節。而奔忙未果。食後加冠。新陽李戚祖。枝谷權戚叔【彪】及一村老少皆會。李丈曰。此䯻一結編髮難再。誠爲墮淚處。都正大父曰。頭已冠矣。以文學充之。豈不好哉。遂拜謁龕位暗淚愀然而下。母主亦愴懷如新將歷拜門中。進士大父曰。殯所不哭。但致拜爲可。後谷叔曰。必以正冠爲務。傳曰。其冠不正。望望然去之。最宜惕念。都正大父曰。稠座中將寒暄必擧目回顧左右。蓋以人事或有脫落也。大竹大父曰。於汝別無加戒之事。然冠者衆責之所歸十分惕念也。終日疾首。夜痛脚。