二十六日【丁卯】。
薄晴。讀衛。季父來傳眉叟道淵出享之論又出云。又曰。今番嶺人應舉。只有百人。大臣奏曰。科事嶺儒一空。大是駭事。慈殿批曰。此必朝家未盡禮待之致也。省試必優數擢用云云。故司馬榜見參者。四十員云。
薄晴。讀衛。季父來傳眉叟道淵出享之論又出云。又曰。今番嶺人應舉。只有百人。大臣奏曰。科事嶺儒一空。大是駭事。慈殿批曰。此必朝家未盡禮待之致也。省試必優數擢用云云。故司馬榜見參者。四十員云。
| 날 짜 | 1802년 2월 26일 / 純祖2 / 壬戌 |
|---|---|
| 날 씨 | 조금 맑다. |
| 내 용 |
「위풍(衛風)」을 읽었다. 계부(季父)가 와서 미수(眉叟) 허목(許穆)을 도연서원(道淵書院)에서 출향(出享)하자는 논의가 또 나왔다고 전하였다. 또 말하기를, "이번 영남에서 과거에 응시한 자가 다만 백 명뿐이었다. 대신(大臣)이 아뢰기를, ‘과거시험에 영남 유생들이 텅 비었으니, 매우 놀랄 일입니다.’라고 하자, 자전(慈殿)이 비답하기를 ‘이는 필시 조정에서 예를 갖추어 대접하는 것을 지극하게 다하지 않아서이다. 성시(省試)에서는 반드시 넉넉한 수를 뽑아서 등용할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이 때문에 사마시(司馬試) 방(榜)에 참여하게 된 자가 사십 명이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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