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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802년 1월 16일 / 純祖2 / 壬戌
날 씨 맑다.
내 용
양동(良洞)의 척제(戚弟) 이재정(李在政)이 찾아왔다.【다시 초대한 걸음이다.】밥을 먹은 뒤에 호계(虎溪)의 3사람이 또 서자 통청(通淸)의 일로 대부(大父)에게 장문의 편지를 바치고, 계속 애걸복걸하며 말하기를 "삼가 문장(門長)께서 적선(積善)의 처분을 내려주시기를 바랍니다."라고 하자, 대부가 말하기를 "내 한 사람이 알바가 아니네. 마땅히 종중의 여러 사람과 의논해 봐야 하네."라고 하였다. 그 사람들은 부복(俯伏)하며 애처롭게 간청하고 갔다. 종형(宗兄)이 계상(溪上)에서 돌아와 도연서원(道淵書院)의 제향(祭享)을 못하게 한 일 대해 말하기를 "처음에 ‘상교(上敎)와 영관(營關)이 매우 준엄하여, 관가(官家)에서 아전을 보내어 조사하여 반드시 위판을 쪼개서 없애게 하였다.’고 운운하였다. 또 말하기를 ‘만약 그렇지 않으면, 너희들에게는 곧 정해진 형벌이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아전이 이를 원장(院長)과 재석(齋席)에게 고하니, ‘전교(傳敎)와 관령(官令)을 어찌 감히 거역하겠는가? 다만 위판을 쪼개는 일은 전교에 없으니 이처럼 해서는 안 된다.’고 하고 이에 재배하고 하직인사를 고하고서 위판을 받들어 땅에 묻었다. 관가(官家)에서 또 사람을 시켜 그 일을 상세히 조사해서 갔다."고 하였다. 대부(大父)가 말하기를 "서원에서 최선을 다하지 않은 듯하다."라고 하였다. 종형(宗兄)이 들어와 말하기를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도 번암(樊巖)[채제공(蔡濟恭)]의 화상(畫像)을 빼앗자, 그 읍의 사림(士林)이 순흥(順興)에 청하기를 ‘어떻게 해야 합니까?’하자, 순흥에서 ‘그 집에 보내는 것만 못하다.’라 하였다."고 운운하였다. 또 말하기를 "예안(禮安)의 시사단(試士壇)【단은 곧 도산의 과거시험장에 세웠는데, 채제공이 그 명을 지었다.】을 부숴 철거하는 일을 소자(小子)가 이번 걸음에 목격했습니다. 대개 당초에 예안 수령(禮安首領)이 아전을 보내어 시사단의 각과 비석을 헐고 파괴하게 했는데, 아전이 들어가서 아뢰자, 수령이 묻기를 ‘어떻게 했느냐?’라고 하니, 아전이 말하기를 ‘도끼날로 그 비석을 쪼개고 그 기둥을 베어, 이미 길가에 전복시켰습니다.’라고 하였다. 수령은 아전이 허투루 명을 받들었다고 하여 그를 매질하여 다시 내보냈다. 아전이 그 비석의 깨진 파편을 부수고, 또 세운 각의 기와와 돌을 가는 곳마다 도끼로 잘게 부수어 남기지 않았다."라고 하였다. 인하여 크게 웃고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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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十六日【戊子】。
晴。良洞李戚弟在政來訪。【再邀之行】食後虎溪人三員。又以庶字事。獻長書於大父。哀乞不已曰。伏望門長積善處分。大父曰。非吾一人所知。當在宗中僉議耳。其人俯伏哀請而去。宗兄還自溪上言。道淵奪享事曰。初間上敎及營關。極爲嚴截。官家送吏糾察。必令斧版而去之云云。又曰。若或不然。汝則有常刑。吏以告院長及齋席。院中以爲傳敎官令。豈敢拒逆。但斧版事。傳敎所不在。不可如此。遂再拜告辭。奉版埋于地。官家又使人悉按其事以去云。大父曰。院中似未盡善矣。宗兄入言。白雲洞書院。亦奪樊巖畫像。而其邑士林請順興曰。何以爲之。順興曰。不若送其家云云。又曰。禮安試士壇。【壇卽陶山科所立。而蔡相作其銘】破撤事。小子今行目睹矣。蓋當初禮安倅送吏。毁破壇閣及碑石。及入奏。倅問何以爲之。吏曰。以斧齒斷其碑。而斬其柱。已顚付於道傍矣。倅以奉命歇後 杖之復出。吏碎其碑片片破毁。又其所立閣瓦與石。逐處斧破爲屑無餘。因大笑而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