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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802년 1월 7일 / 純祖2 / 壬戌
날 씨 조금 흐리다.
내 용
해가 뜨기 전에 서원의 종이 소를 끌고 와서 고하기를 "서원의 모든 장로(長老)가 소인(小人)에게 급히 모시고 오라고 분부(分付)했습니다."라고 하였다. 대부(大父)가 아침이 너무 춥고 또 늙고 병든 사람이기 때문에 억지로 가기 어렵다고 하며 구종(驅從)을 야단쳐서 돌려보내려고 하자, 또 서원의 종이 말하기를 "만약 청을 들어주신다면, 마땅히 젊은 서방님 한 분이라도 보내주십시오."라고 하였다. 밥을 먹은 뒤에 계부(季父)를 보내어 모든 장로(長老)에게 안부를 묻도록 했다. 저녁에 후곡 숙부(後谷叔父)가 서원에서 돌아와 대부에게 고하기를 "통청(通淸)한 서족 10명을 원안(院案)에 기록해서 쓰려고 하니, 한 마을에 각각 한 사람인데 하회는 평성 숙시(坪城叔侍)와 사품 빈(沙品賓)입니다."라고 하였다. 내가 무슨 일이냐고 묻자, 후곡 숙부(後谷叔父)가 말하기를 "영조조(英廟朝)에 서얼(庶孼)의 억울함을 민망하게 여겨 청반(淸班)에 들게끔 허락하여, 비로소 통청(通淸)의 이름이 있었는데, 세상의 풍습이 너무 오래되어 끝내 고쳐서 정하기 어렵게 되었다. 최근에 우리 면에도 완악한 서얼이 감히 불평한 기운을 내면서 위태로운 말로 공갈하였다. 심지어 많은 사람들이 계제사(禊祭祀)를 지냈다【어떤 해를 가리킨다.】는 말이 이르렀다. 사림(士林) 중에 일을 포용하는 자들은 모두 ‘주상의 하교에 비록 학궁(學宮)의 개폐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그러나 학궁은 저 사람들에게 극도로 청반(淸班) 되는 것이니, 통청 받은 사람들이 혐의를 품고 있는 것은 괴이할 것이 없다.’라고 하고, 마침내 면 안에 서얼을 선발하는 것에 대해 의논한 것이다. 정해진 날짜에 강(講)을 받아 참석한 자는 서원을 통행할 수 있는데, 그렇지 않으면 철저히 금지하여 서원에 영영 참여할 수 없게 한다. 참석할 수 없는데 오려는 자는 공인을 모집하여 글로 새겨 방(榜)에 걸어서 알리고, 관에 고하여 엄단한다."라고 운운하였다. 밤에 대부(大父)의 명을 받들어 도정댁(都正宅)에서 원장(院長) 이진동(李鎭東)을 뵈었다. 이 장(李丈)이 서글피 말하기를 "어느덧 담제(禫祭)를 지내고 이미 복(服)을 벗었으니, 너의 마음이 어떠하겠느냐."라고 하고, 지난 겨울에 읽은 것이 어느 정도 되냐고 물었다. 내가 "『시경(詩經)』과 『서경(書經)』 한 질을 다 읽었습니다."라고 대답하자, "착실하고 착실하구나!"라고 하였다. 도정 대부(都正大父)가 후곡 숙(後谷叔)를 돌아보고 말하기를 "내가 길아(吉兒)의 아버지를 위해 애사(哀辭)를 지었는데, 어떤 사람이 이를 보고 상세하게 하지 않음을 비난하는구나."라고 하였다. 또 말하기를 "훌륭한 사람이구나. 그 사람은 지금 세상에 다시 보기 어려운 사람이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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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初七日【己卯】。
薄陰。日出前。院僕牽牛來告曰。院中諸長老主。分付小人急急侍來云矣。大父以朝甚寒。且老病之人難力行。責還驅從。且曰。果若見請。當遣少年書房主一員矣。食後命送季父。使各安未於諸長老。夕後谷叔父還自院中白大父曰。通淸十人錄用於院案。而一村各一人。河回則坪城叔侍及沙品賓矣。余問何事曰。英廟朝憫庶孼之鬱抑。許令齒淸班。始有通淸之名。而世習已久。卒難改定。近者此面中。頑庶敢生不平。以危語恐喝。至有萬人禊【指某年】之說。士林該事者。皆謂上敎。雖不及學宮通否。然學宮在渠。極爲淸班。通淸之含嫌。不足恠矣。遂議選面中庶孼。定日子受講參者。通於院中。否則永永禁絶。使不得廁跡。不參而欲來者。募工刻文揭榜。知委告官嚴斷云云。夜奉大父命往拜李院長【鎭東】於都正宅。李丈戚然語曰。居諸易得。禫禮已除。汝心如何。因問前冬所讀幾許。對曰。詩書一帙讀過矣。曰。着實哉着實哉。都正大父顧後谷叔曰。吾爲吉兒之父作哀辭。有人見之。譏其不能詳悉。且曰。美哉。其人今世難復見矣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