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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802년 1월 5일 / 純祖2 / 壬戌
날 씨 맑다.
내 용
이른 아침에 신양(新陽) 진사(進士) 이여홍(李汝鴻)이 와서 대부를 뵙고 이 원장(李院長)의 전갈(傳喝)을 주었는데, 전갈【과옹(寡翁)[이진동(李鎭東)]의 전갈이다.】에 말하기를 "새해가 여러 날 지났습니다. 기체(氣體)는 어떠합니까? 저는 몸의 병이 날로 심해집니다. 스스로 헤아려보건대, 하회에 발걸음을 하는 일을 다시 잇기가 어려우니, 강산에 주인 없는 것이 한탄스러운 바입니다. 그러나 우선 봄에 햇살이 화창할 때를 기다려 장차 단협(丹峽)의 풍광에 마음껏 노닐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 땅이 어찌 적벽(赤壁)에 견줄 수 있겠습니까? 원컨대, 형은 더 이상 낙동강가의 한 구역만을 의지하지 마십시오."라고 하였다. 마침내 경건한 마음을 가지고 앉아서, 대부(大父)가 크게 웃으며 답하여 전갈하기를 "존형(尊兄)의 행차가 쉽지 않으니, 필시 그대들이 부축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곳 호산(湖山)은 일찍이 존형께서 속세에 물든 것 때문에 첩첩의 산봉우리가 부끄러움을 띠고 초목은 빛을 잃었습니다. 지금 이 말을 들으니 산은 마땅히 이로부터 더욱 높아질 것이고, 물은 마땅히 이로부터 더욱 맑아질 것이니, 진실로 산수의 큰 다행입니다."라고 운운하였다. 밥을 먹은 뒤에 경산 현감(慶山縣監) 이지순(李志淳)경산(慶山)으로 출발했는데, 뒤따라가는 것들이 매우 성대했다. 병산서원(屏山書院)의 회문(回文)이 도착했는데, ‘향례(享禮)가 이달 7일에 있으니, 참석해주시기를 삼가 청한다.’는 내용이고, 또 ‘도연서원(道淵書院)의 제향(祭享)을 되돌리는 일로 관첩(官帖)과 감영의 관문이 나왔는데, 시간을 재촉하고 준엄하기 때문에 모여 의논하지 않을 수 없어서 많은 사람들이 왕림해 줄 것을 삼가 바란다.’는 내용이다. 대부는 병 때문에 가지 않았다. 대개 도연서원은 채 충숙공(蔡忠肅公)[채제공(蔡濟恭)]을 부향(附享)하려 했는데, 여러 사람들의 의론이 다시 배향시킬 수 없다고 했기 때문이다. 세도(世道)가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정령 주먹을 불끈 쥘 만하다. 오후에 의성(義城) 진사 숙(進士叔)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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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初五日【丁丑】。
晴。早朝。新陽李進士【汝鴻】來拜大父。因致李院長傳喝【寡翁傳喝】曰。新歲有日。氣體若何。弟。身病與日俱深。自量河庄蹤跡。難可復續。江山之無主。是所恨也。然姑待春和景明。將恣意乎丹峽風光。其地豈與赤壁比耶。願兄勿復藉勢於洛上一區也。遂起敬而坐。大父大笑答喝曰。尊兄之杖屨不易。必是君等之扶挽。然此處湖山。曾因尊兄之染塵。疊穎帶羞。草木無光。今聞此言 山當自此益高。水當自此益淸。實爲山水之大幸云云。食後。李慶山志淳發向慶山。趨從甚盛。屛山回文來到。內言享禮在今初七。伏請來參。且以道淵書院追享還奪事。官帖營關。急時峻截。不可無聚會商量。伏願濟濟來臨。大父以病不行。盖道淵蔡忠肅公所附享。而物議。更以不可享故也。世道至此。正可扼腕。午義城進士叔來訪。